“성격은 ‘태어난 김에 사는 느낌’이고 좌우명은 ‘어떻게든 되겠지’입니다.”
일단 얘기만 들으면 겉은 약하고 부드러워 보이는데 그가 이룬 업적을 보면 속은 단단하게 꽉 차 있다. 2024 파리 올림픽 사격 여자 25m 권총 금메달리스트 양지인(21·한국체대) 얘기다.
생애 처음 출전한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지만 양지인은 그 기쁨을 누릴 시간도 없이 곧바로 또 총을 잡았다. 최근 전화 인터뷰에서 양지인은 “올림픽 이후 아주 조금 쉬었다. 방송 촬영과 포상금 수여식 등 이곳저곳 행사에 다녔다. 아직 부모님도 만나지 못했다”면서 “당장 20일부터 국가대표 선발전이 진행돼 다시 훈련에 임했다. 다음 주까지 선발전에 나선 뒤에야 부모님을 뵐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부모님께 안겨드리고 싶다던 올림픽 금메달은 아직 대학 기숙사에 보관 중이다.
사격은 평정심이 중요한 ‘멘털 스포츠’다. 양지인도 이번 대회에서 무표정한 얼굴의 ‘포커페이스 사격’으로 눈길을 끌었지만 경기장 밖 그의 모습은 180도 다르다. “올림픽 결선을 앞두고 대기실에서 떨려서 호들갑이라는 호들갑은 다 떨었다”는 그는 “관중도 많고 국민이 TV로 보고 있다고 생각하니 너무 떨렸다. 그래도 일단 사대에 선 뒤에는 떨린다고 안 쏠 수도 없으니까 집중해서 한 발 한 발 쐈다”고 털어놓았다. 양지인은 “‘미래의 내가 알아서 하겠지’라는 생각과 원래 성격이 ‘대충 사는 것’이라 그런 느낌으로 경기에 임했던 것 같다”고 돌아봤다.
하지만 ‘대충’은 양지인의 화려한 프로필과는 어울리지 않는 단어처럼 보인다. 지난해 성인 국가대표로 선발된 그는 항저우 아시안게임 개인전과 단체전에서 동메달을 획득했다. 올해는 1월 아시아선수권과 5월 월드컵에서 두 차례 결선 41점으로 세계 기록과 타이 기록을 각각 쐈다. 김예지가 5월 월드컵에서 결선 42점으로 세계 기록을 경신하기 전 세계 기록 보유자가 양지인이었다. 현재 그는 사격 여자 25m 권총 세계 랭킹 1위를 달리고 있다.
양지인은 이번 올림픽을 앞두고 메달 색과 상관없이 메달 획득을 목표로 뒀다. 본선에서 6위에 올라 상위 8명까지 주어지는 결선행 티켓을 얻었고 결선에서는 카밀 예드제예스키(프랑스)와의 슛오프 접전 끝에 시상대 가장 높은 곳에 섰다. 슛오프 때 예드제예스키를 향하던 프랑스 홈 팬들의 일방적인 응원은 양지인에게 도리어 힘이 됐다. 양지인은 “프랑스 홈팬들의 응원 소리가 너무 컸다. 떨리기는 했지만 그 응원이 내가 아닌 상대 선수를 향한 것으로 생각하니까 그 선수가 더 떨릴 것 같았다”며 “그래서 오히려 마음이 편해졌다. 한 번 더 주어진 기회,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하고 쐈더니 이겼다”고 설명했다. 그는 슛오프 5발 중 4발을 맞혀 1발에 그친 상대를 꺾었다.
양지인은 “사격 하면 ‘양지인’이 떠오르는 그런 위치까지 올라가는 게 선수 생활 목표다. 또 지금 세계 1위인데 이 자리도 최대한 오래 지키면서 그랜드슬램을 꼭 달성하고 싶다”고 다짐했다. 그랜드슬램(올림픽·세계선수권·아시안게임·아시아선수권)까지 몇 개 대회를 더 우승해야 하는 것이냐는 질문에 털털하고 솔직한 대답이 돌아왔다. “그냥 열심히 해서 지금부터 제가 출전하는 대회에서 다 우승하면 되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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