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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혀버린 ‘에어매트’…부천 호텔 화재의 안타까운 죽음

[부천 호텔 화재 참사]

사망자 2명 에어매트 뛰어내렸다 숨져

5층 높이까지는 안전 규격 존재하지만

고층일수록 에어매트 안전성 급락해

소방청 "에어매트 통합 매뉴얼 마련"

경기 부천 호텔 화재 현장에서 사망자 7명 중 2명이 7층에서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가 숨지자 에어매트의 기능을 놓고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지난 22일 오후 경기도 부천시 원미구 중동의 한 호텔 화재 현장에서 남녀 투숙객이 추락 한 뒤 뒤집혀 있는 에어매트. 연합뉴스




지난 22일 경기 부천의 한 호텔에서 발생한 화재에서 사망자 7명이 발생한 가운데, 사망 원인 중 하나로 '에어매트(공기안전매트)'가 거론되고 있어 논란이 커지고 있다. 피난기구인 에어매트가 호텔 밑에 설치됐으나 뒤집어지는 사고가 벌어지면서 2명의 사망자가 나왔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고층 화재에서 에어매트 사용은 "위험성이 큰 일"이라고 지적한다.

24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지난 22일 부천 원미구 중동의 K 호텔에서 벌어진 화재 현장에서 구조를 요청하던 남녀 투숙객 2명이 호텔 1층 소방 에어매트로 뛰어내렸다 숨졌다.

이들의 사망 원인에 대해 소방 관계자는 "처음에는 에어매트가 정상적으로 펼쳐져 있었는데 이들이 뛰어내린 뒤 뒤집힌 걸로 파악됐다"며 "중앙 부분으로 낙하를 해야 가장 안전한데, 객실 창문이 좁은 탓에 떨어진 분이 모서리 부분으로 떨어졌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사건 당시를 담은 영상을 보면 여성 투숙객이 에어매트로 뛰어내릴 당시 예상치 못하게 모서리로 떨어지면서 에어매트 자체가 뒤집어지는 것을 볼 수 있다. 이로 인해 곧바로 뛰어내린 남성 투숙객은 사실상 에어매트가 없는 상태에 놓였을 것으로 보인다.

화재로 7명이 사망하고 12명이 중경상을 입은 경기 부천시 원미구 중동 소재 한 호텔에서 23일 소방과 경찰, 국과수 관계자 등이 정확한 화재 원인을 밝히기 위한 합동 감식을 하고 있다. 부천=오승현 기자


에어매트는 법률상 소방용품에 속하며 소방청은 '공기안전매트의 성능인증 및 제품검사의 기술기준'에 대한 고시를 마련해 2022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이때 매트의 규격은 사용높이 15m 이하인 경우 (3.5 × 3.5 × 1.7)m 이상, 중량은 100 ㎏ 이하로 규정한다.

문제는 약 건물 4~5층 높이에 해당하는 15m 이상에서 사용할 경우에는 별도로 적용되는 규격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국소방산업기술원(KFI)은 15m 높이, 5층형 에어메트까지만 인증을 주고 있다. 에어매트의 특성상 고층 높이에서 사용할수록 안전성이 현격하게 떨어지기 때문이다. 에어매트 운용 과정에서 공통된 '표준매뉴얼'도 존재하지 않는다. 고층화재일수록 에어매트가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에어매트 대신 사용할 수 있는 피난기구도 존재한다. 소방시설법에 따르면 숙박시설은 객실마다 완강기 또는 2개 이상의 간이 완강기를 설치해야 한다. 화재가 발생한 K 호텔에도 완강기가 설치된 것으로 알려졌다.

고층 건물에서 화재가 발생했을 때 몸에 밧줄을 매고 땅으로 천천히 내려오도록 고안된 완강기는 에어매트에 비해 안전성이 높다. 10층 이하의 건축물에 적용되는 만큼 당시 화재 현장에서도 쓰일 수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다만 직관적으로 사용법을 이해할 수 있는 에어매트와 다르게 사용법이 비교적 복잡해 현장에서 사용이 어려웠을 가능성도 제기된다.



전문가들은 상시적인 피난 교육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최영상 대구보건대 소방안전관리학과 교수는 "완강기는 객실에 설치됐을 텐데 사용할 줄 몰랐던 게 아닐까 싶다"면서 "에어매트는 화재 현장에서 사용할 때 불확실성이 큰 피난기구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사고 층수인 약 25m 이상에서 에어매트를 보고 정확한 위치에 뛰어내리려면 어려움이 많다"며 "긴급한 상황에서 (투숙객들은) 패닉에 빠져 현장에서의 안내도 알지 못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덧붙였다.

일각에서 제기된 소방대원이 에어매트를 적절한 장소에 옮기면 되는 게 아니냐는 의문에 대해서는 "무게가 상당히 무거워 어렵다"라고 설명했다.

박청웅 전 세종사이버대 소방방재학과 교수도 "8층 높이에서 에어매트 하강은 매우 위험한 일"이라면서 "소방당국은 (저층인) 3~4층에서 투숙객들이 뛰어내릴 수 있도록 에어매트를 펼친 것으로 보이는데 현장 안내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은 듯하다"라고 추정했다.

다만 다른 구조 대안이었던 피난계단 대피와 사다리차 진입도 어려웠던 상황이었던 것으로 파악됐다. 피난계단이 발화지점인 810호 옆에 위치해 사상자가 발생한 7~8층에서는 이동이 어려웠다. 사다리차 또한 지정 주차구역과 불법주차 차량으로 인해 설치가 쉽지 않았다.

조선호 경기도소방재난본부장은 23일 브리핑에서 "불이 난 객실의 문을 닫고 나왔으면 괜찮은데 문을 열고 나오면서 연기가 급격하게 확산됐다"며 "폐쇄회로(CC)TV 영상을 보면 복도에 연기가 차는데 이곳 특징상 복도가 좁고 열 축적이 많아 투숙객들이 대피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설상가상으로 소방시설법 시행 이전인 2004년 완공된 호텔은 스프링클러 설치도 이뤄지지 않았다.

소방청은 화재 피해를 키운 에어매트 운용과 관련해 대응에 나설 방침이다. 우선 다음달까지 에어매트 통합 매뉴얼을 제작해 일선 현장에 배포한다. 소방청 관계자는 "소방서들이 구매한 에어매트 종류가 다양하고 제조사가 달라서 제각각으로 운영돼왔다"며 "에어매트 설치 위치, 설치 순서, 훈련 방법을 담은 매뉴얼이나 지침을 늦어도 다음달까지는 만들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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