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들의 집단 사직으로 6개월 이상 의료 공백이 이어지는 가운데 코로나19 재확산, 온열질환 환자 급증에다 전국보건의료노동조합까지 총파업을 가결하면서 정부와 의료계에 비상이 걸렸다. 의료 현장의 ‘번아웃’이 심화하는데 몇 주 뒤면 응급의료 수요가 두 배 이상 늘어나는 추석 연휴가 다가오면서 응급실이 포화 상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당초 26일 예정이던 ‘의사 집단행동 중앙사고수습본부’ 회의를 하루 앞당겨 개최하며 사태를 예의주시하는 모습이다. 의료 현장에서는 의료 인력 부족으로 환자들의 불편을 넘어 자칫하다가는 의료 시스템이 붕괴될 것이라는 우려마저 나오고 있다. 거미줄처럼 연결된 의료 시스템의 특성상 한 곳이 무너지면 또 다른 곳에 과부하가 걸리며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정부는 25일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 주재로 중수본 제60차 회의를 열었다. 보건의료노조는 이달 19~23일 61개 병원 사업장을 대상으로 쟁의행위 찬반 투표를 한 결과 91%의 찬성률로 총파업이 가결됐다고 밝혔다. 노조는 노동쟁의 조정에 실패하면 29일 오전 7시부터 동시 파업에 돌입할 예정이다.
조규홍 중수본부장은 “노조의 고민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전공의 이탈 상황에서 파업하게 될 경우 환자와 국민의 불안과 고통을 생각해달라”며 “집단행동보다는 사용자와의 적극적인 대화와 협의를 통해 문제를 해결해주기를 간곡히 요청한다”고 당부했다. 정부는 파업이 발생할 경우 응급 환자의 차질 없는 진료를 위해 응급센터 등의 24시간 비상 진료 체계를 유지하고 파업 미참여 공공 의료 기관을 중심으로 비상 진료를 실시할 예정이다.
보건의료노조는 응급실과 중환자실 등 필수 업무 인력은 파업에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남은 인력의 업무 과부하와 환자들의 불편이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추석 연휴에는 응급실을 찾는 환자가 많게는 2배 가까이 늘어난다. 2022년 추석 연휴(9월 9~12일) 당시 권역·지역응급의료센터 166곳의 환자 내원 건수는 약 9만 건으로 하루 평균 약 2만 3000건꼴이었다. 명절 당일 2만 5000건과 다음 날 2만 4000건에 응급의료센터 이용이 가장 많았다. 평상시 평일의 1.9배 수준이다. 소방청에 따르면 추석 연휴 119를 통한 상담은 하루 평균 6926건 이뤄졌다. 평상시 하루 평균 상담 건수인 4980건의 약 1.4배 수준이다.
과거 사례를 보면 응급실을 찾는 환자의 대부분이 경증 환자라는 게 정부의 설명이지만 전공의 집단 사직 이후 응급실 상황이 상당히 빡빡한 데다 화상이나 교통사고 등 예기치 않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경우 업무에 과부하가 걸리는 것은 불가피하다. 최근 의료 공백에 따른 응급실 과부하로 서울 한림대강남성심병원, 울산대병원, 충북대병원, 세종충남대병원 등이 파행 운영돼 논란이 됐다.
서울 대형 병원들도 예외는 아니다. 서울 서남권 권역응급의료센터인 이대목동병원의 남궁인 응급의학과 교수는 23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권역응급센터에서 혼자 근무한다. 여기는 하루 육십 명 정도를 진료하는 서울 한복판의 권역센터다. 그리고 듀티(당직)마다 의사는 나 혼자다”라며 현재 응급실 상황을 적나라하게 올렸다. 남궁 교수는 “전공의 선생님들이 다 나가서 아무도 없다”며 “현재 의료 체계는 (언제 터질지 모를) 시한폭탄”이라고 지적했다. 의료계에서는 의정 갈등 장기화로 응급실을 중심으로 의료 운영 곳곳에 적신호가 켜진 상황이라 코로나19 확산 추세, 보건의료노조 파업, 추석 연휴 등을 거치며 응급실 연쇄 셧다운 시나리오가 현실화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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