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 당국이 전기차 배터리를 80~90% 충전하면 화재 예방에 효과적이라고 알렸다가 불과 열흘 만에 안내를 취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지방자치단체는 존재하지 않는 리튬배터리 전용 소화기 배치를 발표하는 등 전기차 화재 예방을 둘러싼 잘못된 정보를 쏟아내면서 국민 혼란이 가중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26일 서울경제신문 취재를 종합하면 소방청은 23일 17개 시도와 소속 소방안전재난본부에 ‘전기차 리튬배터리 화재 소화기 관련 안내문’을 수정 배포했다. 전기차 배터리 화재 관련 혼란을 방지하기 위해 13일 발송한 안내문 중 충전율 내용이 삭제됐다.
당시 안내문은 국민들 사이에서 전기차 화재에 대응할 수 있는 전기차 리튬배터리가 존재한다고 인식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기차 리튬배터리 전용 또는 리튬배터리에 적응성이 있는 소화기는 국제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알렸다. 일반적으로 전기차 리튬배터리는 배터리셀 형태로 포장돼 있기 때문에 소화약제 침투가 곤란하고, 화재 시 열폭주 현상으로 국내외 유통 중인 일반 소화기로는 화재 진압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었다.
금속 화재용(D급) 소화기는 리튬배터리 화재와 무관하다는 내용도 포함됐다. D급 소화기는 마그네슘 등 금속 자체가 연소할 때 초기 진화 목적으로 쓰는 소화기이므로 양극재·음극재·전해질 등 다양한 물질의 복합적 작용에 의해 발생하는 리튬배터리 화재에서는 제대로 기능을 못 한다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소방청은 전기차 화재 예방 및 대응 요령을 통해 “완속 충전기로 80~90% 정도 충전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도움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앞서 서울시가 공동주택 관리 규약 준칙을 개정해 공동주택 지하주차장에 배터리 용량의 90% 이하로 충전을 제한한 전기차만 들어갈 수 있도록 권고한 것과 같은 맥락이다.
안내 내용 가운데 소방청이 수정한 부분은 전기차 충전율 권고 사항이다. 소방청은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으로 판단되는 일부 내용이 있다”며 80~90% 충전하는 것이 화재 예방에 도움이 된다는 내용은 삭제했다. 이미 각 지자체와 공공기관들이 주민들에게 충전율 제한을 권고한 상황에서 공지한 내용을 번복하는 상황이 됐다.
열흘 만에 안내가 수정된 것은 전기차 화재 충전율 제한 조치 효과가 미미하다는 지적이 계속됐기 때문이다. 앞서 서울시가 90% 초과 충전 전기차의 지하주차장 출입을 제한하자 배터리 전문가와 전기차 소유주, 제조사의 비판이 이어졌다. 충전율이 사고의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고 배터리 결함 등에서 원인을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소방청 관계자는 “처음에는 전문가 조언을 얻은 것은 아니었고 내부 회의를 거쳐 안내를 했었다”며 “하지만 안내 후 언론 등을 통해 충전 제한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이 많이 나와 안내를 수정했다”고 설명했다.
소방 당국은 전기차 화재뿐만 아니라 에어매트에 몸을 던졌다가 추가 사망자가 발생한 경기 부천 호텔 화재도 미흡한 대처 능력을 보여줬다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청은 이번 사고를 계기로 뒤늦게 에어매트 통합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전기차 화재 대응 소화기를 놓고 지자체 역시 엇갈린 대책을 내놓으면서 혼선이 증폭되고 있다. 전기차 리튬배터리는 단단한 케이스에 쌓여 분말 가루가 닿을 수 없으므로 소화기로 불을 끌 수 없는데도 지자체들이 전용 소화기를 배치하겠다고 발표하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는 지난달 리튬배터리 장착 대중교통 관리를 강화하겠다면서 전기 버스 1700여 대에 전용 소화기를 비치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한 달 뒤 서울소방안전재난본부는 “국제적으로 리튬배터리 화재에 적응성 있는 소화기는 없다”며 모순된 메시지를 냈다. 서울시 관계자는 “행정안전부 협조 요청에 따라 재난 안전 인증 제품을 쓴 것”이라고 해명했다.
문제는 아직도 지자체가 잘못된 정보를 계속 내보내고 있다는 점이다. 소방청은 13일 전기차 전용 소화기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전국에 안내했으나 서울시내 구청을 비롯한 지자체들은 최근까지도 리튬배터리 전용 소화기를 설치하겠다는 발표를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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