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처럼 날씨가 무더울 때면 1989년 여름이 생각난다. 아버지는 서울 가양동 중고차 매매단지에서 애마 한 마리를 업어왔다. 현대차(005380)의 밤 색깔 포니2였다. 우리 가족의 첫 차였다. 뚜벅이 생활 청산을 기념해 강원도 해수욕장으로 여행을 떠났다.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다. 진부령을 거의 다 지날 무렵 포니2가 길 한가운데서 멈췄다. 어머니와 함께 젖 먹던 힘을 다해 차를 밀었다. 아버지는 밖에서 차창 안으로 팔을 넣어 운전대를 잡고 차량을 밀어 갓길로 옮겼다. 뒤차들의 빵빵거리는 클랙슨 소리와 운전자들의 원망 섞인 눈빛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달리던 차가 갑자기 멈추는 일이 지금이야 상상할 수 없지만 그때는 그랬다.
가끔 초등학생 2학년인 아들에게 그 시절 얘기를 들려준다. 공교롭게도 1989년에 초등학생 2학년이었다. 그런데 아들은 공감을 못 한다. 아니, 믿지를 않는다. 제네시스와 아이오닉5부터 얘기한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제네시스는 ‘넘사벽’ 차다. ‘친구 아빠가 사장인데 그 차를 타고 다닌다’고도 한다. 국산차를 깎아내리는 말로 쓰였던 ‘흉기차’도 모른다. 대신 파리 올림픽에서 한국 양궁을 세계 최강으로 이끈 ‘키다리 아저씨’는 안다.
아들의 눈에 현대차그룹은 이미 글로벌 기업이다. 35년 전 초등학생 2학년의 시각과 다르다. 위상이 달라졌다. 소위 말하는 ‘국뽕’이 아니다. 100년이 넘는 업력의 신용평가사들이 인정하고 있다. 현대차·기아(000270)는 올 들어 세계 3대 신용평가사로부터 모두 신용등급 A를 받았다. 신용등급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완성차는 현대차·기아를 포함해 벤츠·도요타·혼다 등 4곳에 불과하다. 외신들도 “글로벌 톱3 자동차 메이커로 부상한 데 이어 금융시장에서도 투자 가치와 안정성이 업계 최정상급으로 올라섰다”고 호평했다. 현대차·기아를 향해 과거처럼 ‘바퀴 달린 냉장고’라고 혹평하는 외신은 이제 단 한 곳도 없다.
주식시장에서의 행보도 남다르다. 현대차는 28일 시가총액 ‘톱10’ 기업 중 처음으로 주주환원을 대폭 강화한 밸류업 프로그램을 발표했다. 내년부터 3년간 매년 순이익의 35% 이상을 배당과 자사주 매입 후 소각 등을 통해 주주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아들이 손자에게 들려줄 현대차그룹에 대한 기억이 지금과 같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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