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워싱턴DC의 상징 모뉴먼트 인근에 위치한 ‘메모리얼콘티넨털홀’은 유명 관광지는 아니지만 미 외교사에 한 획을 그은 역사적인 장소로 꼽힌다. 지금은 도서관이 자리 잡은 이곳에서는 1921~1922년 미국 주도 최초의 군축회의인 ‘워싱턴 군축회의’가 열렸다. 당시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전승국이 된 열강들은 경쟁적으로 전함을 건조했는데 이에 대한 재정 부담이 커지자 당시 미국 대통령 워런 개메일리얼 하딩의 제안으로 강대국들의 전함 건조에 제동을 걸었다.
탈냉전 이후 미국이 주도하는 군축은 전함에서 핵무기로 바뀌었다. 쿠바 미사일 위기를 겪은 후 우발적 핵전쟁을 막아야 한다는 절박감이 커진 때문이다.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 간 군축은 1972년 탄도미사일 발사대 수를 현 수준에서 동결하는 전략무기제한협정(SALT 1)으로 시작해 1991년 핵탄두와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의 감축에 합의한 전략무기감축협정(스타트)으로 이어졌고 2010년 4월 뉴스타트 체결로 강화됐다. 2009년 취임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체코 프라하에서 ‘핵무기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발표했고 이를 통해 이듬해 노벨 평화상을 수상했다. ‘핵무기 없는 세상’에 대한 오바마 전 대통령의 비전을 공유한 사람이 당시 부통령이었던 조 바이든 대통령이다.
하지만 최근 미국의 움직임은 반세기 넘게 이어온 핵군축 기조가 뿌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보여준다. 바이든 대통령은 올 3월 중국·북한·러시아와의 핵 대결을 준비하는 내용을 반영한 핵무기 운용 지침 개정안에 서명했다. 취임 이후 적대국의 핵 공격을 억지하거나 반격하기 위해서만 핵무기를 사용하겠다는 ‘핵무기 단일 목적 사용’ 공약을 폐기한 데 이어 핵무기 실전 배치를 늘리는 길까지 연 셈이다.
워싱턴의 한 외교 소식통은 “상원의원 시절부터 핵 의존을 낮추겠다는 정책을 강조했던 바이든의 행보를 감안하면 엄청난 변화”라면서 “미국이 군축 기조를 포기했다기보다는 지정학적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소식통은 “미러 간 맺고 있는 유일한 핵군축 협정인 뉴스타트가 2026년 종료되면 사실상 미국이 주도한 군축의 시대는 끝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한 발 더 나아가 “핵 확산은 차기 미국 대통령의 핵심 의제”라고 짚었다.
지난 10여년간 이뤄진 가장 급격한 변화는 중국이 핵 강국으로 급부상했으며 사실상 러시아의 지원 속에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 미국의 판단이다. 미 국방부 우주정책차관보 대행을 역임한 비핀 나랑은 “러시아는 핵무기 생산을 위한 고농축우라늄 원자로 연료를 중국에 공급하고 있다”면서 “10년 전 미국이 핵 현대화 프로그램을 만들 때 예상하지 못한 중국 핵 전력의 증강 및 다양화는 새로운 핵 시대의 결정적인 특징”이라고 규정했다.
북한 역시 핵탄두를 빠르게 늘리고 러시아에 재래식무기를 지원하면서 ‘북중러 핵 연대’라는 새로운 위협이 부상하고 있다. 대선 출마를 포기한 바이든 대통령이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을 중국에 보내 핵 군축 회담 재개를 타진한 것도 중국의 핵 억제를 마지막 과업으로 여기기 때문으로 읽힌다. 앞서 미국은 중국에 수차례 핵 통제 회담을 제안했지만 중국 측은 대만 문제 등을 이유로 거부해왔다.
1922년 미·영·일·프·이 5개국이 서약한 워싱턴 군축회의에서 서구 열강들은 일본의 주력함(전함) 규모를 영미의 60% 수준으로 억제했는데 이에 대한 불만을 품은 일본은 1936년 조약을 탈퇴한 후 해군력을 키웠고 결국 태평양전쟁을 일으켰다. 북중러의 핵 팽창을 제어하지 못할 경우 힘의 균형은 또다시 무너지고 전쟁의 위험은 높아질 것이다. 북핵을 머리에 얹고 사는 우리 입장에서는 ‘군축의 시대’가 끝나가는 것에 대한 경계와 철저한 대비가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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