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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론직설] “정책 불확실성이 최대 리스크…‘팩트’에 기반한 일관성 유지해야”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

韓 경제 성장 지속성 기로…90년대 IMF 개혁 약발 다해

뼈 깎는 개혁·혁신만이 저출생·고령화 위협 상쇄할 해법

정부, 경제 주체들과의 현실 인식 괴리 좁히려 노력해야

의견 수렴·조율·검증 과정 없는 정책으로는 개혁 어려워

최상엽 연세대 교수가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책 일관성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우리 경제가 안팎으로 전례 없는 불확실성에 직면했다. 대외적으로는 11월 미국 대통령 선거와 중동의 지정학 리스크, 미국·중국의 경기 불안, 글로벌 통화정책 전환(피벗·pivot)까지 동시다발적 변수가 산재해 있다. 대내적으로도 부동산·금융 시장 불안과 경기회복 지연 우려, 여야 정쟁 정책 불확실성이 맞물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다. 불확실성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해온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는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경제 이슈가 정치화하면서 나타나는 정책 불확실성이야말로 우리 경제가 직면한 최대 리스크”라며 “경제주체들을 패닉에 빠뜨리지 않으려면 정책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로 근무한 적이 있는 최 교수는 “경제정책 수립의 출발점은 정책 입안자와 경제주체들이 인식하는 경제 상황의 괴리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것”이라며 “충분한 의견 수렴과 조율·토론 과정을 거쳐 정책을 입안하고 개혁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글로벌 불확실성이 전에 없이 고조되고 있다. 무엇이 지금의 불확실성을 특징짓는가.

△지난 10년간 국제 정세가 급변했다. 과거에도 지역적·국가적 문제는 많았지만 1970년대, 1980년대부터 2000년대까지는 글로벌화가 진행되면서 세계가 ‘통합’으로 나아간다는 뚜렷한 방향성이 있었다. 지금은 지정학적 분절화로 인해 그 기본 전제가 깨지면서 불확실성이 심각해졌다.

-여러 리스크 중 우리 경제가 가장 경계해야 할 부분은 뭔가.

△대내적인 정책 불확실성을 경계해야 한다. 지금 경제적으로 풀 수 있는 많은 문제들이 정치화되고 있다. 금융투자소득세 같은 문제도 당파적으로 입장이 갈라져 있다. 연구와 팩트에 기반한 정책 방향이 나오기보다 정치가 정책을 주도하다 보면 불확실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집값이 불안한 상황에서 2단계 스트레스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도입을 돌연 연기하는 식의 일관되지 못한 메시지도 정책 불확실성을 키웠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다 보면 정부에 대한 불신이 쌓이고 경제가 정치에 잡아먹히게 된다. 지정학적 변화나 글로벌 경제의 향방은 단기적으로 큰 변수이지만 우리가 통제할 수는 없다. 그보다는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일, 정책 일관성을 높이는 일에 집중해야 한다.

-커지는 불확실성에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가.

△거듭 말하지만 일관성만이 해법이다. 불확실성을 없앨 수는 없지만 정책 입안자는 정책 대응에 있어서 일관성을 견지해야 한다. 등대가 있으면 보고 나아가면 되는데 불빛이 움직이면 길을 잃을 수밖에 없다. 경제주체들을 패닉에 빠뜨려서는 안 된다.

-내수 침체와 집값 상승이라는 딜레마 속에서 한국은행이 지난달 금리를 동결했다. 어떻게 평가하는가.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본다. 지금은 집값·물가·경기 등 여러 정책 목표가 상충되는 시점인데 한 가지 수단으로 모든 목표를 달성할 수는 없다. 중앙은행으로서는 내수가 나쁘다고 무조건 금리를 낮출 것이 아니라 우선 물가에 초점을 두고 데이터에 기반해 통화정책의 방향을 잡아야 한다. 다행히 물가는 어느 정도 안착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한은이 3개월 내 금리 인하의 여지를 둔 것도 맞다고 생각한다. 미국은 이달 중 금리를 낮출 것이 거의 확정적이다. 그렇다고 우리가 미국을 무조건 따라가야 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 간 자본 이동을 결정하는 요인이 과거와는 달라진 만큼 한미 금리 차에 너무 신경 쓰지 말고 국내 상황에 맞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금리 인하가 집값을 자극할 것이라는 우려가 크다.

△우려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기준금리만으로 부동산 시장을 안정시킬 수는 없다. 기준금리가 높은 와중에도 느슨한 대출 규제로 인해 집값은 오히려 뛰고 있지 않나. DSR과 전세자금대출 규제 강화 등 정부가 진작 실행했어야 할 정책 수단들을 동원해야 한다. 유효한 거시 건전성 정책이 있는데 기준금리에만 매달려서는 안 된다. 대출 규제에 따른 시장 불만도 있겠지만 정책 의도를 투명하게 설명하고 설득해나가야 한다.

-미국 경제가 나 홀로 승승장구할 수 있는 요인은 무엇인가.

△미국처럼 경제 규모가 큰 나라가 계속 성장하는 동력은 결국 높은 생산성과 혁신의 문화에 있다고 본다. 그러니 정권이 달라져도 정치가 경제를 잡아먹지 않는 것이다. 반면 한국은 경쟁이 치열한 사회이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경쟁하지 않기 위한 경쟁’을 벌이는 것 같다. 상층으로 올라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미국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일찍 성공해서 편해지기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대학에 들어가고 취업을 하면, 회사에서 어느 정도 높은 자리로 올라가면 더 이상 경쟁을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도 같은 차원의 문제다. 중소기업·비정규직도 능력에 따라 얼마든지 대기업·정규직으로 옮길 기회가 있어야 하는데 한 번 경쟁에서 밀리면 끝이라는 인식이 팽배하다. 이래서는 생산성이 높아질 수 없다. 미국과 우리나라의 차이는 발전적 경쟁의 유무에 있다고 본다.



-일각에서는 미국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그럴 확률은 높지 않을 것이다. 실업 증가는 고용시장 과열이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이고 물가도 진정되고 있다.

-지금 한국의 경제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일반적 거시경제 모형으로 경제 상황을 판단할 수도 있지만 경제 현실에 대한 인식은 어떤 준거집단에 속했느냐에 따라 다르다는 점을 먼저 짚어둘 필요가 있다. 지금까지 많은 경제모형들이 ‘합리적 인간’을 가정한 것과 달리 현실에서는 개개인의 생각·행동이 매우 다르다는 것이 요즘 경제학의 화두다. 수치화된 성장률 지표가 2%든 3%든 각자가 체감하는 경기는 소득·나이·성별 등에 따라서도 서로 다르다는 것이다. 지금 경제가 지표상으로 나쁘지 않을 수는 있지만 현실 경제주체들의 인식은 정책 입안자가 생각하는 경제 상황과 괴리가 매우 클 수 있다는 점을 인지해야 한다. 장기적 관점에서 보면 우리 경제는 선진국 문턱을 완전히 넘어 발전을 이어갈 수도, 고꾸라질 수도 있는 변곡점에 있다. 단기적인 경기 부침은 정책 대응으로 극복하면 된다. 하지만 저출생과 생산성 저하로 인한 지속적인 성장 감속이 문제다. 이 역시 개인의 준거집단에 따라 인식이 다른데 젊은 세대의 인식은 정책 입안자들보다 더 부정적일 수 있다.

-저마다 경제 인식이 다르다면 정부가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우리 사회에서 경제에 대한 인식의 스펙트럼이 매우 분산돼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최근 연구를 통해 우리 국민들은 정치 성향에 따라 경제 여건에 대한 인식이 매우 다르고 정부 정책에 관해 같은 정보가 주어져도 정반대의 결과를 예상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이처럼 하나의 현상이나 지표를 놓고도 경제주체들이 다르게 인식한다는 점에 정부가 동의하는 것이 출발점이다. 개인 간 이질성을 이해하고 서로 다른 집단의 의견을 조율해서 정책을 펴야 한다. 가령 연금 개혁은 각 세대가 짐을 나눠 져야 하는 문제인데도 젊은 세대의 목소리가 반영되지 않고 있다. 다수결의 논리만으로 정책을 결정하면 젊은 세대는 미래를 더 비관하고 정책을 불신할 수밖에 없다.

-경제가 장기 저성장에 빠지는 것을 피할 방법은 없나.

△성장 잠재력 둔화에서 벗어날 방법은 혁신과 개혁뿐이다. 기술 혁신을 통해 저출생·고령화에 따른 생산인구 감소를 상쇄해야 한다. 그나마 우리 경제는 과거 외환위기 때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한 고통스러운 개혁을 실행한 덕에 지금까지 버텨왔지만 이제는 약발이 다했다. 지금은 뼈를 깎는 개혁이 필요한 시기다.

-우리나라가 일본과 같은 장기 불황에 빠질 수도 있을까.

△얼핏 보면 한국과 일본은 비슷해 보이지만 내수 경제 크기가 다르다. 일본 경제는 큰 내수 시장과 막대한 대외 자산이 있었기에 수십 년 불황을 버틸 수 있었다. 우리는 일본식 장기 디플레이션과 제로 성장을 감당할 수 없다. 한국 경제에 위기가 닥친다면 일본과 같은 식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고 위기에 너무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는 없다. 경제 시계를 길게 놓고 보면 위기는 늘 있었고 어떤 의미에서 한 단계 도약을 위한 ‘웨이크업 콜(자명종)’ 역할을 해왔다. 오히려 걱정인 것은 눈앞의 위기를 막으려고 정책 여력을 소진해 성장 동력을 갉아먹는 것이다. ‘내가 있을 때만 문제를 피하자’는 쇼터미즘(short-termism)은 장기적으로 독이 될 수 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방향성은 맞는 부분이 많다. 특히 노동시장 이원화 등 고질적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노동 개혁은 시급한 과제다. 개혁은 어려운 일이지만 그것 말고는 답이 없다. 그런데 불확실성과 어려움이 따르는 개혁을 실행하려면 충분한 의견 수렴과 연구·토론 등 검증 절차를 거쳐야 하는데도 현 정부에서는 그 과정이 부족한 것 같아 아쉽다. 서로의 인식 차이를 받아들이고 커뮤니케이션을 통한 사회적 합의를 도출해야 하는데 지금까지는 일방통행이었다.

최상엽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가 2일 서울경제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책 입안자들은 경제주체들과 경제 상황에 대한 인식의 괴리가 크다는 점을 인식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조언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He is…

1984년 서울에서 태어나 연세대 경제학부를 졸업하고 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이코노미스트를 거쳐 2017년부터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거시경제와 국제금융 분야에 대한 연구로 초헌학술상과 한국경제학술상을 수상했으며 2023년 연세 이윤재 라이징 펠로우에 임명됐다. 현재 한국은행 경제연구원 경제자문 패널 자문교수, 한국금융학회 이사 등을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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