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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집기 불가능한데 '원점 재검토'만 고수…"유예땐 더 큰 후폭풍"

■의대 증원 갈등

수험생 대혼란…집단소송 우려도

국민 70% 이상 증원 지지했지만

정부도 열린자세로 설득 나서야

의료 공백 장기화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응급진료 역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9 구급대가 8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의료계가 정치권의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도 불구하고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며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등을 폭넓게 논의하자는 제안에도 내년도 정원은 왜 논의하지 못하느냐며 공세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증원된 의대 정원을 입시 요강에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이 9일 수시 모집 원서 접수로 본격화되면서 현실적으로 원점 재검토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금 증원을 번복하면 20만 수험생 등이 대혼란에 빠지고 이에 따른 집단소송 등 후폭풍은 수습 불가능한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8일 의료계에 따르면 전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서울의대 교수단, 전국 시·도의사회장단은 대법원에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의 효력 정지를 위한 가처분 소송은 1심, 항고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에 재항고 계류 중이다. 의료계 소송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더 큰 공익인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작은 사익인 입시생들의 신뢰 이익은 양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재검토’를 포기하지 않는 배경은 의료 공백 사태의 핵심인 전공의·의대생이 이를 관철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때문이다. 최근 응급실 대란이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할 명분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미 2025학년도 대입 일정이 시작된 마당에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미 증원된 정원을 반영한 의대 입시가 올 7월 재외국민 전형으로 시작됐다. 9일부터는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의대 증원 일정이 번복되면 대입을 준비 중인 고3·N수생 등 수험생 약 20만 명이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3년간 국립대 의대 전임 교원을 1000명 증원하고 2030년까지 2조 원 이상을 지원하는 등 향후 투자 기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의료계가 바라는 대법원 재항고 결과도 ‘막판 뒤집기’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항고심 재판부가 의료 개혁을 통한 ‘공공 복리 증진’이 의대생들의 손해보다 더 크다고 명시한 만큼 이 논리를 대법원에서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장기화하며 응급실을 중심으로 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국민 70% 이상이 지지한 의대 정원 증원 자체에 대한 필요성이 상당했음에도 정교한 정책 수단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의사 단체와의 갈등 과정에서 증원 지지 여론을 지렛대 삼아 주도권을 잡는 데도 실패했다. 특히 현재의 응급실 대란에서 정부가 보여준 난맥상은 이를 더욱 부각한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 현장에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갈등 상황이 길어지면서 남아 있는 의료진마저 지쳐 떠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결국 정부가 열린 자세로 의료계를 향한 설득을 시도할 때라는 지적이다. 송기민 한양대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는 “지금은 급한 불부터 끌 때”라며 “국민들이 의료 공백에 따른 불안이 커져 있으니 정부가 공백을 메울 대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는 역설적으로 필수·지역의료 중심으로 의사 수 부족을 드러낸 만큼 좀 더 정교하게 의사 인력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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