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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증원부터 멈추라"는 의료계… 지금 멈추면 20만 수험생 '멘붕' 불보듯


의료계가 정치권의 ‘여야의정’ 협의체 제안에도 불구하고 ‘2025학년도 의대 정원 원점 재검토’를 주장하며 한 발자국도 뒤로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했다. 여야의정 협의체에서 2026학년도 의대 정원 등을 폭넓게 논의하자는 제안에도 내년도 정원은 왜 논의하지 못하느냐며 공세를 펴고 있다. 하지만 이미 증원된 의대 정원을 입시 요강에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이 9일 수시 모집 원서 접수로 본격화되면서 현실적으로 원점 재검토는 불가능한 상황이다.

의료계도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 철회 주장을 접고 건설적인 논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지금 증원을 번복하면 20만 수험생 등이 대혼란에 빠지고 이에 따른 집단소송 등 후폭풍은 수습 불가능한 수준까지 갈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의료 공백 장기화로 권역응급의료센터의 중증·응급진료 역량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119 구급대가 8일 서울 한 대학병원 응급실로 응급환자를 이송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의료계 “의료붕괴 막는 공익 위해 입시생 신뢰 사익 양보해야”


8일 정부 안팎의 설명을 종합하면 의대 정원 증원을 반영한 2025학년도 대입 수시모집 원서 접수가 9일부터 시작된다. 앞서 7월부터 재외국민 전형이 시작된 바 있지만 이번 수시모집 전형부터가 실질적인 입시 일정이 시작되는 시점으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의료계는 여전히 내년도 의대 정원부터 재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대한의사협회는 여당에서 제안한 ‘여야의정 협의체’에 참여하기 위한 조건으로 이날 2025·2026년 의대 증원 계획 백지화를 요구했다. 의협 관계자는 “협의체 논의 결과가 입시에 반영되려면 2025·2026년 의대 증원은 일단 없던 일로 하고 최소 2027년 정원부터 논의하는 것이 의미가 있지 않을까 싶다”고 말했다.

전일 대한응급의학의사회, 서울의대 교수단, 전국 시·도의사회장단은 대법원에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집행을 정지해달라는 탄원서를 제출했다. 내년도 의대 정원 증원의 효력 정지를 위한 가처분 소송은 1심, 항고심을 거쳐 현재 대법원에 재항고 계류 중이다. 의료계 소송 대리인인 이병철 변호사는 “더 큰 공익인 의료 붕괴를 막기 위해 작은 사익인 입시생들의 신뢰 이익은 양보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의료계가 ‘2025학년도 의대 증원 재검토’를 포기하지 않는 배경은 의료 공백 사태의 핵심인 전공의·의대생이 이를 관철하지 않으면 돌아오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 때문이다. 최근 응급실 대란이 전공의들을 돌아오게 할 명분으로 의대 증원 원점 재검토에 힘을 실어줄 수 있다는 판단도 깔린 것으로 보인다.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전공의 파업 관련 대책을 요구하는 보건의료노조의 벽보가 붙어 있다. 연합뉴스


내년 의대정원, 되돌리기 늦어… “정부, 의료공백 메울 대안 내야”


하지만 이미 2025학년도 대입 일정이 시작된 마당에 뒤집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분석이다. 이미 증원된 정원을 반영한 의대 입시가 올 7월 재외국민 전형으로 시작됐다. 9일부터는 수시 원서 접수가 시작된다. 의대 증원 일정이 번복되면 대입을 준비 중인 고3·N수생 등 수험생 약 20만 명이 대혼란에 빠질 수밖에 없다. 정부가 3년간 국립대 의대 전임 교원을 1000명 증원하고 2030년까지 2조 원 이상을 지원하는 등 향후 투자 기조에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의료계가 바라는 대법원 재항고 결과도 ‘막판 뒤집기’ 가능성은 적다는 분석이다. 항고심 재판부가 의료 개혁을 통한 ‘공공 복리 증진’이 의대생들의 손해보다 더 크다고 명시한 만큼 이 논리를 대법원에서 뒤집기는 어렵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중론이다.



의정 갈등이 7개월째 장기화하며 응급실을 중심으로 의료 현장의 위기감이 커지는 상황에서 정부의 책임론도 불거지고 있다. 국민 70% 이상이 지지한 의대 정원 증원 자체에 대한 필요성이 상당했음에도 정교한 정책 수단을 제시하지 못했을 뿐 아니라 의사 단체와의 갈등 과정에서 증원 지지 여론을 지렛대 삼아 주도권을 잡는 데도 실패했다. 특히 현재의 응급실 대란에서 정부가 보여준 난맥상은 이를 더욱 부각한다. 전공의 이탈로 의료 현장에 의사가 부족한 상황에서 갈등 상황이 길어지면서 남아 있는 의료진마저 지쳐 떠나게 되면 문제가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가 컸던 게 사실이다.

결국 정부가 열린 자세로 의료계를 향한 설득을 시도할 때라는 지적이다. 송기민 한양대대학원 보건학과 교수는 “지금은 급한 불부터 끌 때”라며 “국민들이 의료 공백에 따른 불안이 커져 있으니 정부가 공백을 메울 대안을 내야 한다”고 지적했다. 현재의 의료 공백 사태는 역설적으로 필수·지역의료 중심으로 의사 수 부족을 드러낸 만큼 좀 더 정교하게 의사 인력을 늘릴 수 있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는 얘기다.

8일 서울 시내 한 대학병원 응급실 앞에 진료가 지연되고 있다는 안내문이 게시돼 있다. 뉴스1


불과 일주일 남은 추석연휴… 계속되는 ‘응급실 대란’ 우려


한편 추석 연휴를 불과 일주일 앞둔 상황에서 응급실 대란에 대한 우려는 여전히 크다. 의정 갈등 이후 전공의 집단 이탈로 대형 병원 의료진의 피로가 누적되는 가운데 정부는 군의관을 긴급 파견하고 방문 가능한 응급실 정보 공유, 진료 수가 인상 등을 통해 수용 능력을 높인다는 계획이지만 불안감은 가시지 않고 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권역·지역 응급의료 센터 180곳의 후속 진료 가능 여부를 분석한 결과 이달 5일 현재 27개 중증·응급 질환의 진료가 가능한 병원은 88곳이었다. 의료 공백 직전인 올 2월 첫째 주 109곳보다 20%가량 줄어든 수치다. 가장 상황이 심각한 진료 분야는 성인 대상 기관지 응급 내시경으로 평소 109곳에서 진료할 수 있었으나 5일 현재 60곳으로 45% 급감했다. 일주일 전 100곳과 비교해도 40%가량 줄었다. 복지부는 “6일에는 다시 평균 진료 가능 기관이 101개 수준으로 파악된다”고 밝혔다. 의료기관의 일시적인 상황에 따른 진료 가능 정보 입력과 배후 진료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반영된 것으로 우려할 상황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대형병원들의 경우 응급실 상황이 상당히 빡빡하게 돌아가고 있다. 정부가 군의관들을 긴급 파견했지만 제대로 배치되지 않고 있다. 복지부에 따르면 이달 4일 이대목동병원 3명, 아주대병원 3명, 세종충남대병원 2명, 충북대병원 2명, 강원대병원 5명 등 의료기관 5곳에 군의관 15명이 파견·배치됐으나 모두 응급실에 근무하지 않고 있다. 세종 충남대병원에서는 군의관들이 환자 진료를 할 수 없다는 입장을 밝혀 모두 부대로 복귀했다. 충북대병원은 응급의학과 전문의 출신 군의관 2명을 응급실이 아닌 중환자실에 배치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파견 군의관의 의사와 의료기관 필요 등을 조율해 현장에서 도움이 될 수 있도록 교육과 소통을 강화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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