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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트와 가격차 줄어 발길 뚝…"안팔려 시든 채소 다 버릴판"

■사라지는 전통시장…고물가·침체로 폐점 속출

대부분 국산 취급…물가대응 어려워

계속된 더위에 농산물 금세 상하고

손님들은 값싼 수입산 찾아 마트로

하루 평균 방문객 2년새 16% 급감

60여년간 장사한 상인 "역대 최악"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서울 시내의 한 전통시장이 명절 특수가 무색하게 매우 한산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오승현 기자




“지난 63년 동안 시장에서 장사를 했는데 이렇게 사람이 없는 건 살다 살다 처음 봅니다.”

추석 연휴를 하루 앞둔 13일 오후 서울 성북구의 대표 전통시장인 길음시장은 ‘대목’을 앞뒀다는 사실이 무색할 정도로 쥐 죽은 듯 조용했다. 손님을 기다리다 지친 상인들은 자리에 앉아 부채질을 하며 하염없이 TV만 응시하고 있었다. 좌판에는 시들어 판매가 어려워진 채소들만이 방치돼 있었다.

길음시장에서 1961년부터 채소 가게를 운영해온 조 모(92) 씨는 이번 추석을 ‘역대 최악의 대목’이라고 묘사했다. 조 씨는 “지난 설 연휴 때보다는 물론 코로나19가 창궐했던 2021년, 2022년 때보다도 손님이 적은 수준”이라며 “예전에는 하루 평균 60만~70만 원의 매출이 발생했다면 지금은 수중에 하루 30만 원도 떨어지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조 씨가 매대에 놓인 배추를 칼로 갈라 보여준 단면에서는 까맣게 썩은 부분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조 씨는 “안 그래도 날씨가 더워 채소가 잘 상하는데 손님까지 오지 않아 팔리지 않은 채소들을 그대로 버려야 한다”며 “모든 품목의 가격이 올라 어려운데 매일 파리까지 날리니 착잡한 심경”이라고 밝혔다.

13일 길음시장에 버려져 있는 배추의 모습. 장형임기자


전통시장 쇠락의 주된 원인으로는 물가 상승이 꼽히고 있다. 국산 농축산물의 물가가 상승하면서 주로 국산을 취급하는 전통시장이 상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에 놓인 것이다. 전통시장의 주된 경쟁 상대인 대형마트의 경우 물가 상승으로 인한 시민들의 부담감을 고려해 저렴한 선물세트를 마련하거나 수입산 식재료를 취급하는 등 대안 마련이 가능하지만 소상공인 위주의 전통시장은 유연한 대처가 어렵기 때문이다.

축산물품질평가원 축산유통정보에 따르면 이달 8일 기준 한우 1등급 갈비의 100g당 가격은 7009원인 반면 미국산 소고기 갈비살(냉장) 가격은 100g당 4303원인 것으로 조사됐다. 수입산이 국산에 비해 절반 가까이 저렴한 것이다.



마트와 전통시장의 가격 차이 또한 매년 좁혀지는 추세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매년 발표하는 자료에 따르면 2022년 전통시장과 대형마트의 추석 상차림 비용은 각각 24만 3273원, 30만 7430원으로 6만 4157원 차이가 났다. 그러나 올해는 각각 24만 785원, 28만 8727원을 기록하며 그 격차가 4만 7942원으로 25%나 줄어들었다.

물가가 연일 고공 행진을 하다 보니 소비자들이 차례상에 올리는 음식의 양 자체를 줄이려는 경향을 보이고 있어 저렴한 식재료를 구하기 위해 애써 전통시장을 방문하기보다는 접근성이 좋고 이용이 편리한 대형마트를 찾는 사람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13일 방문한 공덕역 인근의 한 대형마트에 진열된 배추가 매진돼 있는 모습. 정다은 기자


실제로 같은 시각 방문한 서울 마포구 공덕역 인근의 한 대형마트에서는 식재료를 구매하러 온 손님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국산이 아닌 수입산 농축산물을 취급하는 매대에 몰려 있었다.

이날 마트를 찾은 한 70대 여성은 “요즘 채소 가격을 보면 경기를 일으킬 정도로 깜짝 놀란다”며 “배추를 사러 왔는데 오전에 이미 매진됐다고 한다. 요즘 물가가 많이 올라 상대적으로 저렴한 수입산을 사기 위해 대형마트를 찾는다”고 말했다.

마트에서 육류를 판매하는 직원은 “구이용 소고기를 구매하러 온 고객들은 대부분 미국산을 선택한다. 한우는 가격이 비싼 탓에 30% 할인을 하고 있음에도 잘 나가지 않는다”며 “국내산 선물세트를 찾는 손님들도 있지만 그나마도 그 수가 적다”고 밝혔다.

이 같은 전통시장의 침체는 전국 대형 주요 시장의 공실률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국부동산원에 따르면 올해 2분기 기준 대구 주요 상권 중 공실률이 가장 높은 곳은 ‘전국 3대 시장’으로 유서 깊은 서문시장·청라언덕 상권이었다. 무려 31.5%에 달해 1년 전(24.2%)보다 6.9%포인트나 증가했다. 전통시장 활성화 성공 사례로 자주 거론됐던 광주 대인시장의 공실률도 2021년 7.5%에서 올 2분기 33.9%까지 5배 가까이 치솟았다. 전통시장의 쇠락은 일부 지역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다.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에 따르면 전통시장 내 빈 점포 비중은 전국 기준 2020년 8.6%에서 2022년 9.8%까지 늘어났다. 하루 평균 방문객 수도 같은 기간 5413명에서 4536명으로 16.2% 급감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요즘 소비자들은 전통시장의 가격 경쟁력보다 대형마트의 편의성을 선호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다”며 “여기에 최근 수입산을 대량으로 유통하는 대형마트가 국산을 주로 취급하는 전통시장을 가격 경쟁력 측면에서도 앞서가는 추세라 이 같은 현상이 벌어지고 있어 대책이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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