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년 도전 끝에 일본 집권 자민당 총재에 오른 집념의 정치인 이시바 시게루(67) 일본 자민당 총재 당선인은 자민당에서 ‘여당 내 야당’으로 불려온 인물이다.
1957년 도쿄에서 태어난 그는 돗토리현 지사가 된 부친을 따라 유년시절을 돗토리현에서 보냈다. 도쿄 게이오대 법학부를 나와 1979년 미쓰이은행(현재 미쓰이스미토모은행)에 들어갔다. 부친인 이시바 지로가 참의원 의원, 돗토리현 지사 등을 지냈지만 “아버지처럼 되기는 어렵다”며 은행원의 길을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1981년 부친 사망 이후 다나카 가쿠에이 전 총리의 권유로 정치인이 되기로 결심했다. 1986년 자민당 소속으로 당시 최연소인 29세의 나이에 중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에 입문했다.
2002년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시절 방위청(현재 방위성) 장관으로 처음 내각에 들어간 뒤 안보 분야 등에서 전문성을 키웠다. 방위·농림수산·지방창생담당상 등 풍부한 각료 경험이 강점으로 꼽힌다. 반면 자민당에 직언(直言)을 서슴지 않아 온 탓에 의원들의 지지 기반은 약한 편이다. 1993년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 당시 불신임안에 찬성하고 탈당했다가 1997년 재입당하면서 자민당 내에서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혔다. 또 2009년 당시 아소 다로 총리에게 퇴진을 요구했던 것을 계기로 그와 정적이 됐다.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라는 이미지가 강해 국민 지지율이 높다. 이번 선거를 앞두고 실시된 각종 여론조사에서도 국민·당원 지지율 상위권을 줄곧 차지했다.
역사 인식 측면에서는 ‘비둘기파’로 평가된다. 2017년 언론 인터뷰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한국이 납득할 때까지 사죄해야 한다”고 했고 2019년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파기’ 사태 때는 “우리나라(일본)가 패전 후 전쟁 책임을 정면으로 마주하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문제”라고 주장해 우익의 공격을 받기도 했다. 제2차 세계대전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신사 참배에도 부정적이다.
다만 독도 문제에는 일본 우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는 2011년 자민당 영토특위(영토에 관한 특명위원회) 위원장 재임 당시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제정을 추진했다. 또 자위대를 국방군으로 규정하는 헌법 개정을 하자고 주장하는 등 강경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좌우명으로 ‘와시토리후군(鷲鳥不群)’을 삼고 있다. 방위청장 시절 부하 직원에게 배운 것이다. 독수리처럼 강한 새는 무리를 짓지 않는다는 의미로 그의 정치 행보와 닮았다는 평가가 따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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