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28일(현지시간)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의 수장 하산 나스랄라를 제거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중동전 확전 위기감이 최고조로 치닫는 가운데 이란이 헤즈볼라와 접촉해 대응 방안을 논의한다는 외신 보도도 나왔다.
AP·로이터통신 등 외신에 따르면 이스라엘군은 전날 헤즈볼라 지휘부 회의가 열린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를 정밀 공습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 공습으로 헤즈볼라 남부전선 사령관 알리 카르키 등 일부 지휘부도 사망했다고 이스라엘군은 덧붙였다. 익명의 헤즈볼라 소식통은 AFP통신에 전날 저녁부터 나스랄라와 연락이 끊겼다고 전했다.
반면 이란 타스통신은 레바논 정보원을 인용해 “오늘 시오니스트 정권(이스라엘)이 감행한 잔혹한 테러로 헤즈볼라 고위 지도자 중 순교한 이는 없다”며 “시오니스트들의 작전은 실패로 끝났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이스라엘군이 공식적으로 나스랄라 암살 사실을 밝힌 것이다.
이런 가운데 이란 최고지도자 아야톨라 세예드 알리 하메네이가 신변 안전을 위해 보안을 강화한 국내 모처로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복수의 당국자들이 하메네이가 이란 내에서 보안 단계를 높인 안전한 장소로 이동했다고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는 또 이란이 현재 나스랄라 제거에 대응한 후속 조치를 결정하기 위해 헤즈볼라를 비롯한 다른 역내의 대리 그룹들과 지속적 접촉을 이어가고 있다고 전했다. 헤즈볼라는 이스라엘의 지속되는 정밀 타격 이후 이란의 도움을 요청해 왔지만, 이란 당국은 그간 아직은 때가 아니라며 확전에는 선을 그어 왔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전날 레바논 베이루트 남부 다히예에 대해 정밀 공습을 단행했다. 이스라엘군은 이어 다음날인 이날 이번 공습으로 나스랄라를 제거했으며, 이스라엘 시민을 위협하는 자는 누구든 찾아낼 것이라며 단호한 입장을 재확인했다.
나스랄라는 1992년부터 32년 간 레바논의 친이란 시아파 무장단체 헤즈볼라를 이끌어 왔다. 1960년 베이루트 동쪽 부르즈 하무드의 난민촌 이슬람 시아파 가정에서 태어난 나스랄라는 남부 항구도시 수르에서 교육을 마치고, 시아파 정당인 아말 운동에 가입한다.
1982년 이스라엘의 레바논 침공에 맞서 이란의 주도로 창설된 헤즈볼라에게 합류했고, 1992년 헤즈볼라 공동 창립자이자 당시 지도자였던 아바스 알무사위가 이스라엘의 헬기 공습으로 사망한 뒤 헤즈볼라의 수장인 사무총장 자리에 올랐다.
나스랄라 체재 하에서 헤즈볼라는 30여년간 이란의 지원을 받아 막강한 화력을 지닌 군사 조직을 키웠고, 레바논 정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정당으로도 성장했다.
헤즈볼라의 병력 규모는 3만∼5만명에 달하며 12만∼20만기의 비유도 미사일과 로켓도 보유해 레바논 정부군보다도 우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의 지도하에 헤즈볼라는 2006년 이스라엘 군인 2명을 포로로 잡으면서 34일간 이스라엘과 치열한 전쟁을 치렀다. 전쟁은 이스라엘과 헤즈볼라 모두의 승리 선언으로 끝났고, 헤즈볼라는 아랍권에서 성공적인 대이스라엘 항전으로 칭송받았다. 역내 분쟁에도 적극적으로 개입하며 가장 영향력이 큰 '이란의 대리인' 역할을 해왔다.
특히 지난해 10월 7일 발발한 가자 전쟁 중에는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에 대한 연대와 지지를 표명하며 11개월 넘게 이스라엘과 무력 대치 중이다. 헤즈볼라는 하마스와 이라크 내 친이란 민병대 등 역내 다른 '저항의 축' 세력의 무장대원 훈련소 역할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역할 덕에 나스랄라는 예언자 무함마드의 자손을 뜻하는 '세예드'(sayyid)라는 호칭까지 갖고 있다.
외신들은 나스랄라 사망이 사실일 경우 이란을 중심으로 ‘저항의 축’이 이스라엘에 대한 항전 의지를 불태우며 중동전이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달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을 내놓고 있다. 이란이 배후에서 지원하던 '저항의 축' 핵심 인물인 나스랄라가 사살되면서, 맹주인 이란도 결단을 내려야 할 시간이 임박했다는 분석이다. 앞서 이스라엘이 지난 7월 31일 이란 신임 대통령 취임식 참석 차 이란 수도 테헤란을 방문 중인 하마스 정치국 최고 지도자 이스마일 하니예를 암살하기도 했다. 이란은 당시 보복을 천명했지만, 아직까지 실질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