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직히 질투가 납니다. 환자와 언어적인 소통에 문제가 없다면 (한국 의료기관에) 일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니까요.”
29일 제주시 제주신화월드 랜딩컨벤션센터에서 열린 제37회 국제침술협의회(ICMART) 국제학술대회에 참석한 마이크 커밍스 영국의학침술학회(BMAS) 이사는 최근 경희대한방병원을 방문한 소감에 대해 이 같이 밝혔다. 침술이 아시아 지역에서 기원했다는 사실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의료 인프라와 연구 기반이 기대 이상으로 뛰어나 놀랐다는 것이다.
ICMART는 침 치료를 연구해 임상에서 활용할 과학적 근거를 구축하기 위해 1983년 오스트리아 빈에서 출범했다. 현재 유럽과 북미를 중심으로 3만 5000여 명의 의료인이 활동 중이다. 통합의학 분야에서는 명실공히 최고 권위의 국제학술단체로 꼽힌다. ICMART는 1986년부터 매년 국제학술대회와 정규 연수과정을 운영해 왔다. 유럽, 미국 등 서구권에서만 개최되던 연례 행사가 아시아 지역에서 개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27일부터 사흘간 ‘통합의학 헬스케어의 미래-침술, 의과학 및 기술의 융합’이라는 주제로 열린 올해 학술대회에는 36개국 110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최도영 대한한의학회장은 “의사와 한의사로 의사 면허가 양분돼 있는 제도적 차이로 인해 2008년 ICMART 가입 시도가 불발됐음을 고려하면 격세지감”이라며 “15년 넘게 국제 교류에 힘쓴 결과 한의학의 우수성을 널리 알리고 국제적 위상을 인정 받게 됐다”고 말했다. 한국처럼 의료 체계가 이원화되어 있는 국가는 드물다. 중의사와 서의사가 나뉘어 있는 중국조차 면허가 허용하는 의료행위 범위는 동일하다. 의사 면허가 일원화되어 있는 대부분의 국가에서는 의사가 시행하는 의료행위에 제약이 거의 없다. 침술이건 한약 처방이건 수련 기간을 거치기만 하면 임상 현장에서 적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한국의 한의사를 제외한 학회 참가자들은 전부 의과대학을 졸업한 의사 면허 소지자(MD)이며 박사학위 보유자도 여럿이다.
기존 약물이나 외과적 수술로 해결되지 않는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에게 과학적으로 규명된 침술을 시행하고 현대의학과 통합해 발전시키는 것이 이들의 궁극적인 목표다. 유럽에서 온 의사들은 침술을 주로 근골격계 질환이나 항암치료에 따른 통증 관리 용도로 사용하는 유럽과 달리 한방 진료과목이 내과·침구과·재활의학과 등으로 세분화되어 있는 점을 높이 샀다. 프랑스 파리 동부 로스어린이병원에서 재활의학과 진료를 담당하는 파트리크 소트뢰유 ICMART 회장은 “오랜 역사를 지닌 한의학에 비해 유럽에서 침술을 치료에 활용한 것은 100년 남짓”이라며 “유럽은 물론 중국, 일본과도 다른 한의학만의 독창적인 접근방식이 매우 흥미롭게 여겨진다”고 말했다.
특히 초음파, 뇌파계, 3차원(3D) 동작분석 의료기기 등을 한의 의료기술에 접목하려는 시도는 해외 의사들의 관심이 뜨거운 분야다. 학회 둘째날인 28일 이승훈 대한한의학회 홍보이사(경희대한방병원 침구과 교수)가 시연해 보인 초음파 유도하 약침 시술, 2024 파리 올림픽 배드민턴 여자 단식에서 금메달을 딴 안세영 선수의 치료를 담당했던 장세인 대한스포츠한의학회장의 침술 등을 실시간 중계하는 라이브 세션은 참가자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이사는 “한의학 분야에 근거 중심 의학의 개념이 도입된 이후 한의 치료가 안전하고 효과적이라는 근거가 쌓이고 있다”며 “한의학이나 의학, 어느 한 분야가 모든 환자를 치료할 순 없지 않나. 한의학과 의학이 각자의 가치를 인정하고 보완하는 통합의학의 개념이 새로운 의료 패러다임으로 자리잡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