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치솟는 공사비 상승을 막기 위해 민간 업체의 중국산 시멘트 수입 허들을 낮춘다. 수입 확대 압박 카드를 꺼내 국산 시멘트 가격을 낮추겠다는 의도로 풀이된다. 이를 통해 지난 3년 동안 약 25%가량 급등한 건설 공사비 상승률을 2026년까지 연 2% 내외로 관리한다는 방침이다.
정부는 2일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발표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건설공사비지수는 2020년 100에서 지난해 127.9로 최근 3년간 연평균 8.5% 급등했다.
먼저 정부는 민간 업체가 중국 등 해외에서 시멘트를 수입할 때 항만 시멘트 저장 시설(사일로) 인허가와 내륙 유통 기지 확보 등 애로 사항을 해소해주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특히 시멘트 품질이 안전과 직결된 만큼 KS 인증 등을 통해 엄격히 검증하기로 했다.
또 정부는 건설 부문에서 향후 5년간 민간투자를 30조 원 확대하고 투자 부문에서 올 4분기 내 24조 원 규모의 현장 대기 사업의 가동을 지원하기로 했다. 공사비 상승 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특례를 마련하고 민간투자제도를 혁신해 다양한 방식의 민자사업을 활성화하는 방안을 내놓은 것이다.
구체적으로 수익형 민자사업(BTO)의 경우 2021~2022년 건설투자 국내총생산(GDP) 디플레이터 상승률(16.4%)과 소비자물가 상승률(7.6%) 간 차이의 절반(4.4%)을 총사업비에 반영한다. 임대형 민자사업(BTL)에 대해서는 ‘가격 산출 기준일∼고시일’의 물가 변동분 중 50%를 인정해주기로 했다. 정부 관계자는 “민자 적격성 조사를 통과했지만 아직 착공되지 않은 사업과 새로운 방식의 사업 추진으로 5년간 30조 원 수준의 민간투자가 확대될 것”이라고 밝혔다.
시멘트 수급 불안 막는다지만…"가격 경쟁력 없어 공사비 안정엔 한계
정부가 발표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두고 건설 업계에서는 기대와 우려의 목소리가 동시에 나온다. 골재 채취원 확대와 공공 공사비 현실화의 경우 건설 시장 활력 제고에 기여할 것으로 보이지만 해외 시멘트 수입은 실효성이 떨어져 공사비 부담이 여전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정부의 탄소 중립 정책에 발맞춰 친환경 투자를 늘려온 국내 시멘트 업계는 역차별이라며 반발하고 나섰다.
정부는 이날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건설공사비 안정화 방안을 통해 최근 3년간 연평균 8.5%에 달했던 건설공사비 상승 폭을 2026년까지 2%대로 낮추겠다고 밝혔다. 주요 방안으로는 △민간 업체의 시멘트 수입 시 부지 확보 및 인허가 등 절차 지원 △바다·산림골재 공급 확대 △내국인 기피 건설 공종에 한해 숙련 외국인 도입 검토 △공공 공사비 현실화 제도 개선 연내 확정 등이다. 이는 공사비 급등에 주택 공급이 감소하는 데 따른 조치다. 공급 선행지표인 주택 인허가 물량은 올해 1~8월 기준 3만 2458가구로 전년 동기 대비 12.3% 줄었다.
이번 대책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 해외 시멘트 수입 지원 강화다. 시멘트는 건설 자재값의 최소 30%를 차지한다. 2020년 7월 톤당 7만 5000원이었던 국산 시멘트 가격은 올해 7월 11만 2000원으로 약 50% 뛰어 공사비 상승의 주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다. 그동안에도 시멘트 수입이 가능했지만 저장비와 운반비 등을 고려하면 국산과 비교해 가격 경쟁력이 떨어져 수요가 없었다. 그러나 국산 시멘트 가격이 급등하자 중소·중견 건설사를 중심으로 수입산을 사용하겠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대한건설단체총연합회는 이날 입장문을 내고 “특히 환경문제 등으로 공급이 제한적인 산림 골재 채취의 규제 완화로 그간 반복적인 수급 불안 및 가격 급등으로 인한 문제가 일정 부분 해결될 것”이라고 밝혔다. 반면 시멘트 수입 확대에도 불구하고 공사비 부담은 계속될 것이라는 우려는 여전하다. 대형 건설사의 한 관계자는 “운반비 역시 크게 올랐기 때문에 중국산 시멘트의 경우 국산과 거의 가격 차이가 없고, 사용 시 무엇보다 입주민들의 반발이 클 것”이라며 “시멘트 수입만으로는 공사비 부담을 줄이기에 역부족”이라고 지적했다.
다만 국산 시멘트 가격 안정화에 영향을 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시멘트의 주원료인 유연탄 가격은 2022년 3월 톤당 246달러로 역대 최고를 기록한 뒤 올해 7월 90달러 수준으로 내렸다. 이은형 대한정책건설연구원 연구위원은 “시멘트는 물성상 장기 보존하거나 유통하는 제품이 아니기 때문에 수요 물량과 공급처를 사전에 정해두지 않는 이상 외국산을 보편적으로 사용하기는 어렵다”며 “이번 정부 대책은 시멘트 가격 인하를 압박하는 카드로 꺼냈을 여지가 크다”고 말했다.
국내 시멘트 업계는 주택 공급 감소에 수요가 급감한 상황에서 시멘트 수입이 본격화하면 경쟁력이 약화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시멘트 업계는 정부의 ‘2050 탄소 중립’ 선언에 따라 자구적으로 탄소 배출을 줄이기 위한 투자를 해왔다. 한일현대시멘트는 최근 2년간 영월공장 시멘트 생산 과정에서 배출되는 탄소를 줄이기 위해 3030억 원을 투자했다. 화석연료인 유연탄 대신 폐플라스틱·폐비닐 등 합성수지 연료를 태우는 순환 자원 연소용 설비는 대당 가격이 1000억 원을 웃돈다. 여기에 순환 자원 저장 창고와 운송 튜브까지 구축해야 해 친환경 공정 전환에는 천문학적인 비용이 든다.
특히 국내 업체들은 순환 자원 연료 사용률을 35%까지 끌어올렸지만 시멘트 수입 대상국으로 거론되는 중국은 관련 진전이 더디다. 순환 자원 연료 사용률이란 폐비닐이나 폐합성수지 등 순환 자원을 연료로 쓰는 비율을 의미한다. 이 비율이 높을수록 화석연료를 덜 사용하게 돼 탄소 배출도 줄어든다. 중국의 순환 자원 사용률은 20%를 밑도는 것으로 알려졌다. 시멘트 업계의 한 관계자는 “순환 자원 사용률이 낮다는 것은 그만큼 관련 투자도 적다는 것”이라며 “수천억 원을 투자한 국내 친환경 시멘트가 중국산 시멘트를 가격으로 이기기는 어렵다”고 우려했다.
유럽연합(EU) 등은 무역장벽을 두는 방식으로 외산 시멘트에 대응하고 있다. EU는 2026년부터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를 시행하고 해외에서 들여오는 모든 시멘트 제품에 탄소 배출량 보고서 제출을 의무화한다. 보고서를 토대로 제품별로 탄소 배출량이 많으면 유료 인증서 구매를 강제해 권역 내 고가 친환경 시멘트와의 형평성을 맞춘다. 정부가 KS인증을 통해 외산 시멘트의 내구성을 검증하겠다고 밝혔지만 EU처럼 자국 업계와 형평성을 맞추는 차원의 정책을 제시하지 않은 것도 시멘트 업계의 반발이 나오는 이유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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