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4일(현지 시간) 중국산 전기차에 향후 5년간 최고 45.3%의 관세를 적용하는 방안을 회원국 투표로 통과시켰다. 미국에 이어 유럽 시장도 잃게 된 중국은 강하게 반발하며 보복 조치를 하겠다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그런 중국 만큼이나 반발하는 유럽 내 플레이어가 있다. 바로 독일 자동차 메이커들이다.
로이터·블룸버그통신 등 주요 외신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이날 2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중국산 전기차 상계관세 부과 관련 최종안을 제출하고 투표에 부쳤다. 최종안은 독일·헝가리 등 5개국의 반대표에도 프랑스·이탈리아·그리스 등 10개 회원국이 찬성표, 12개국이 기권표(사실상 찬성)를 던지며 통과됐다.
이날 투표 가결로 기존 일반 관세 10%에 더해 최종 관세율은 17.8%∼45.3%가 되며 최종 관세율은 이달 31일부터 5년간 적용된다. 중국산 테슬라 전기차에 대한 관세는 17.8%로 최저 관세율을 적용받는다.
앞서 미국이 지난달 27일 중국산 전기차에 부과하는 관세를 25%에서 100%로 인상했는데 유럽도 인상 대열에 동참하게 됐다.
자동차 수출 산업 의존도가 큰 독일은 ‘무역 전쟁’을 우려해 반대 목소리를 냈지만 통과를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독일 자동차업계와 정부는 합작회사 형태로 중국에서 전기차를 생산하는 자국 업체 피해를 우려해 EU의 관세 인상에 반대해 왔다.
폭스바겐은 가결 직후 성명을 내고 "예정된 관세는 잘못된 접근방식이며 유럽 자동차업계의 경쟁력을 키우지 못한다"며 "통상분쟁을 피하는 게 (협상의) 공동 목표가 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올리버 치프제 BMW 회장은 "유럽 자동차산업에 치명적 신호"라며 "패자만 남게 될 무역갈등을 막기 위해 EU와 중국의 신속한 협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힐데가르트 뮐러 독일자동차산업협회(VDA) 회장은 "독일 자동차 업계는 기본적으로 자유롭고 공정한 무역을 선호한다"며 "건설적 대화를 통해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밝혔다.
크리스티안 린드너 독일 재무장관은 엑스(X·옛 트위터)에 "유럽연합은 징벌적 관세에 대한 표결 결과에도 불구하고 무역전쟁을 일으켜서는 안 된다. 협상을 통한 해결이 필요하다"고 적었다.
아이러니한 것은 중국산 저가 전기차와의 경쟁으로 중국 시장에서 독일 자동차 업계의 입지가 좁아졌다는 것이다. 폭스바겐은 2008∼2022년까지 15년간 중국 전기차 시장에서 판매량 1위 자리를 놓치지 않았다가 지난해 중국 토종 전기차 브랜드인 비야디(BYD)에 밀려 2위로 밀려났다.
중국 전기차는 중국 시장에서 폭스바겐을 위축시킨 데 이어 유럽 본토로 세를 확장 중이지만 독일 자동차 업체들에게 중국 시장은 포기할 수 없는 곳이다.
폭스바겐·BMW·메르세데스벤츠 등은 지난해 매출 3분의 1을 중국에서 벌어들였다.
독일 자동차 업계는 EU의 관세 부과로 중국 정부가 보복 관세에 나서고 소비자 불매 운동이 거세지면 매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며 우려하고 있다.
중국도 강력 반발했다. EU 주재 중국 상회는 성명을 통해 “유럽 측은 신중하게 행동하고 관세 이행 시기를 연기해야 한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지리자동차도 “EU와 중국의 경제·무역 관계를 방해해 궁극적으로는 유럽 기업과 소비자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고 경고했다.
중국은 협상과 함께 보복 조치도 준비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유럽산 브랜디·유제품·돼지고기와 관련한 반(反)덤핑 조사에 착수했다.
EU는 중국과 협상은 계속한다는 방침이다. 앞서 중국 전기차 업체들은 EU 측에 유럽 수출 시 판매 가격의 하한을 자발적으로 설정하겠다고 제안한 바 있는데 양측은 이를 놓고 협상을 벌이고 있다. 뉴욕타임스(NYT)는 “양측이 합의하면 관세가 발효된 후에도 폐지될 수 있다”고 짚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