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이진숙 방통위원장이 헌법재판관 정족수 부족으로 탄핵 심판이 정지되는 것이 부당하다며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였다. 신속한 재판을 받을 국민의 기본권을 과도하게 침해한다는 취지다. 헌정 사상 최초로 재판관 6명이 탄핵 심판에 나서면서 당장 헌재 기능이 마비될 우려는 줄었다.
14일 헌법재판소는 이 위원장이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의 효력을 정지해달라고 제기한 가처분 신청을 재판관 전원 일치 의견으로 인용했다.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은 ‘재판부는 재판관 7명 이상의 출석으로 사건을 심리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달 17일 이종석 헌재소장과 김기영·이영진 재판관이 퇴임하면 재판관 9명 가운데 6명이 남게 되기 때문에 헌법재판소는 심리를 중단할 수밖에 없다. 재판관 후임은 국회의 몫이지만 여야 간 의견 차가 좁혀지지 않으면서 현재까지 후보자 추천도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다.
이에 이 위원장은 이달 10일 가처분 신청과 동시에 헌법재판소법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다. 취임 이틀 만인 8월 2일 탄핵소추안이 통과돼 2달 넘게 직무가 정지된 상태다.
헌재는 가처분 신청에 대한 인용 결정의 근거로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가 보장돼야 한다는 점을 짚었다. 재판부는 “헌법 제27조 제3항 전단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국민의 기본권으로 규정하고 있다”며 헌법상 보장되는 기본권이 지켜져야 한다고 판단했다. 재판관의 공석으로 사건을 심리조차 할 수 없는 것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과도하게 제한한다는 취지다.
이어 “신청인의 권한 행사 정지 상태가 그만큼 장기화되면서 방송통신위원회 위원장으로서의 업무 수행에도 중대한 장애가 발생할 수 있다”며 헌법재판소법 23조 1항으로 인해 회복하기 어려운 중대한 손해를 입을 위험이 있다고 짚었다.
헌재는 가처분을 인용해 6명의 재판관이 탄핵 심리를 이어가더라도 의결은 6명 이상의 찬성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재판관의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어 3명의 재판관 의견에 따라 사건의 향배가 달라질 수 있는 경우에는 현재 공석인 재판관이 임명되기를 기다려 결정을 하면 된다”며 “보다 신속한 결정을 위해 후임 재판관이 임명되기 전에 쟁점을 정리하고 증거조사를 하는 등 사건을 성숙시킬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반복되는 법관의 공백 문제도 지적했다. 헌재는 “재판관 궐위에 대한 불이익을 아무런 책임이 없는 국민이 지는 것”이라며 “임기제를 두고 있는 우리 법제에서 임기만료로 인한 퇴임은 당연히 예상되는 것임에도 재판관 공석의 문제가 반복해 발생하는 것은 국민 개개인의 주관적 권리보호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의 객관적 성격 측면에서도 심각한 문제”라고 설명했다.
헌재는 국회가 헌법상 작위의무 불이행에 따른 문제라는 점도 강조했다. 국회가 후임자를 선출해야 할 헌법상 의무가 있지만 이를 이행하지 않고, 직무대행제와 같은 제도적 보완 장치가 전무하다는 점도 지적했다.
정재황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헌법 재판은 국민의 기본권을 지키는 최후의 보루"라며 “국회가 의무를 다 하지 않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상황”이라며 “9명이 재판을 하되 순환재판부를 두고 심리의 공백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등 여러 대안을 강구해야 할 때”라고 밝혔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