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 대통령실에서 83일 만에 마주한 윤석열 대통령과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야당이 집중적으로 정치 공세를 펴고 있는 김건희 여사 문제에 대해 심도 있게 논의했다. 한 대표는 ‘국민 눈높이’를 강조하며 예고대로 김 여사 관련 3대 요구 사항(대외 활동 중단·인적 쇄신·각종 의혹 규명 협조)을 조목조목 지적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발언을 경청했지만, 대외 활동 자제나 인적 쇄신 등에 대해서는 바로 특별한 입장을 밝히지는 않았다. 대신 당정이 힘을 합쳐 야당의 헌정 유린에는 적극 대응하는 한편 민생 문제에 있어 적극 소통하자고 의견 일치를 봤다. 두 사람의 독대에 준하는 이번 면담이 향후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주목된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21일 용산 대통령실 내 파인그라스에서 1시간 20분 동안 대화하며 주요 현안을 협의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데이비드 래미 영국 외교장관 접견 등 외교 일정으로 당초 예정된 시간보다 20여분가량 늦게 한 대표를 만났다. 윤 대통령은 차에서 내려 기다리던 한 대표와 악수하고 10분 정도 함께 파인그라스 잔디밭에서 어린이정원 인근까지 산책했다.
이후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파인그라스 내부로 이동해 면담을 진행했다. 두 사람의 대화에는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관례대로 배석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커피와 청량음료를 마시며 정국 현안을 놓고 자유롭게 대화를 나눴다. 면담은 별도의 모두 발언이나 기자들의 취재 없이 비공개로 진행됐다.
한 대표는 붉은색 파일에 정리해온 주요 내용을 윤 대통령에 전했다. 특히 10·16 재보궐선거에서 확인한 지역 민심을 전했다. 박정하 국민의힘 당 대표 비서실장은 “김건희 여사 이슈 해소와 관련해 앞서 밝힌 세 가지 방안과 특별감찰관 진행의 필요성, 그리고 여야의정 협의체의 조속한 출범 필요성을 말씀드렸다”고 전했다.
특히 김 여사 문제에 있어 과감한 변화와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 대표는 최근 김 여사의 ‘마포대교 자살 예방 행사’와 같은 단독 현장 활동을 거론하며 “대선 과정에서 국민들에게 약속한 조용한 내조를 (김 여사가) 해야 한다”고 건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기에 더해 소위 ‘한남동 라인’으로 불리는 김 여사 측근 인사들과 관련한 인적 쇄신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 대표는 “정부의 개혁정책, 외교·안보 정책에 대해 지지하고 당이 적극적으로 지원할 것”이라며 “다만 개혁의 추진 동력을 위해서라도 부담되는 이슈들을 선제적으로 해소할 필요성이 있다”고 밝혀 ‘김 여사 리스크’를 털고 갈 것을 거듭 촉구했다.
윤 대통령은 한 대표의 발언을 경청하면서 특히 김 여사의 단독 행보에 대한 문제는 참모진을 통해 민심을 전해 들은 만큼 고민하는 모습을 보였다는 후문이다. 김 여사가 해외 순방이나 공식 일정 등 영부인 고유 업무를 아예 수행하지 않을 수는 없는 만큼, 대외 활동 자제에 대해서는 어느 정도 공감을 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이어 김 여사 일정을 공식 관리할 제2부속실이 이달 말 예정대로 출범함에 따라 김 여사와 관련한 걱정을 덜어내도 될 것이라고 설명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윤 대통령은 김 여사와 관련한 인적 쇄신이나 각종 의혹에 대한 조사 협조 부분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의지를 보이지 않으면서 답을 내놓지는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김 여사 측 인사들로 불리는 비서관·행정관이 비선일 리 없고 용산에는 오로지 대통령 라인만 있다는 입장을 거듭 강조한 것이다. 김 여사 관련 의혹 조사에 대해서는 특별감찰관 등 국회에서 의견을 먼저 모아달라고 응수했다.
윤 대통령과 한 대표는 의정 갈등에 따른 의료 공백 대응에는 당정이 더욱 적극적으로 소통해 슬기롭게 개혁을 추진해 나가자는 데 의견을 함께했다. 야당이 ‘김건희 여사 특검법’을 고리로 대통령 탄핵을 압박하는 사태와 같은 헌정 유린은 막아내고 당정이 하나가 될 필요성은 윤 대통령이 강조해 한 대표도 뜻을 같이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번 회동에서 김 여사 문제와 관련해 명쾌한 답이 나오지 않아 ‘빈손 회동’이라는 지적도 나오지만 윤 대통령과 한 대표가 일정 부분 이견을 줄여가며 당정 갈등 양상을 봉합했다는 평가도 제기된다. 이르면 내주 출범할 제2부속실 설치를 통해 김 여사의 단독 행보가 줄고, 활동도 자제할 것이란 측면에서 윤 대통령이 한발 물러선 것이란 분석도 있다.
윤 대통령이 노골화하는 야당의 ‘탄핵 공세’를 의식해 당정이 하나되는 모습을 보이기 위해 한 대표의 입장도 일부 고려했다는 얘기다. 당정 갈등이 지속될 경우 4대 개혁 등 정부가 추진 중인 국정과제도 힘을 받기 어려운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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