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이 부족하고 ‘을(乙)’의 입장인 중소기업에게 기술은 특히 중요하다. 중소기업 기술 보호를 위해 여러 부처가 노력하는 이유다. 특허청은 ‘특허‧실용신안‧영업비밀‧아이디어’, 산업통상자원부는 ‘국가첨단전략기술‧국가핵심기술’, 중소벤처기업부와 공정거래위원회는 ‘기술 자료’라는 각각 다른 이름으로 중소기업 기술을 보호하고 있다.
그렇다면 특허청의 ‘특허‧실용신안‧영업비밀’과 중기부‧공정위의 ‘기술 자료’는 어떻게 구별될까. ‘기술 자료’로 보호되는 중소기업 기술에 대해 공정위와 차별화되는 중기부의 정책은 무엇인가. 이런 고민을 담은 생생협력법 개정안은 필자가 중기부 장관 시절이던 2021년 8월 통과됐다.
특허청의 ‘특허‧실용신안‧영업비밀’과 달리, 중기부‧공정위의 ‘기술자료’는 거래·계약 관계에서 기술을 보호하기 위한 법적 개념이다. 따라서 구제 방법 등을 법률로 정하기보다는 ‘기술자료’를 제공하기 전 당사자 간 합의로 비밀유지계약서를 작성하게 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비밀유지계약에 손해배상액, 사용금지 등 주요 내용을 담도록 의무화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현실적이란 의미다.
공정위가 담당하는 하도급법의 목적은 ‘공정 거래’ 확보이지만 중기부 상생협력법은 말 그대로 당사자 간의 ‘상생 협력’이라는 점에서 근본적 차이가 있다. 그렇다면 중기부는 대‧중소기업의 협력을 촉진하는 ‘조정 제도’와 침해의 입증을 위한 ‘증거 개시 지원’을 중심으로 상생협력법을 특화하는 것이 범부처간 분업 체계에 맞다.
하도급법은 상생협력법보다 적용 범위가 좁다. 그래서 ‘기술 자료’에 관련된 새로운 행정상 규제나 민사상 책임을 도입할 때 하도급법에 먼저 규정하거나, 적어도 상생협력법과 하도급법에 동시에 두는 것이 두 법률의 관계에 부합한다.
두 가지 외에도 중기부가 정책을 수립할 때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바로 생존을 위해 당장의 거래 재개가 간절한 중소 기업인들의 목소리다. 중기부 장관 재임 당시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기술 분쟁 사건을 조정으로 매듭짓고 거래를 재개시킨 적이 있었다. 얼마 전 그 사건이 일어난 지 8년여 만에 대기업의 유죄가 확정됐다는 소식을 뉴스로 접했다. 그때 조정이 성립되지 않았다면 민사 소송은 여전히 계속됐을 것이고, 해당 중소기업은 자금난으로 이미 사라졌을지 모른다.
불공정거래 단속이나 지식재산 보호도 중요하지만, 분쟁을 신속히 조정하고 거래를 재개할 수 있게 하는 것도 중소기업의 생존에 중요하다. 처벌과 규제만이 아니라 ‘상생협력’을 통해 더불어 사는 사회로 나아가는 길을 정부가 앞장서 열어야 한다. 중기부의 역할을 기대하고 또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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