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중근(1879~1910) 의사가 멀고 먼 타지에서 짧은 생을 마치면서까지 이루려고 했던 것은 나라와 민족의 독립, 그리고 동양평화였다. ‘독립’은 그의 삶의 처음과 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안 의사는 “나는 천국에 가서도 반드시 우리나라의 국권 회복을 위해 힘쓸 것”이라는 유언을 남겼다.
안 의사의 독립과 동양평화에 대한 기백과 염원이 집약된 글씨들이 24일부터 서울 종로구 대한민국역사박물관에서 전시된다. 문화체육관광부의 ‘안중근 의사 하얼빈 의거 115주년 기념 특별전 안중근 서(書)’를 통해서다. 이번 전시는 안 의사가 순국 직전에 썼던 글씨, 이른바 ‘유묵(遺墨)’을 통해 의사의 삶 속에 녹아있는 사상을 조명한다. 전시에서는 유묵 18점을 만나볼 수 있다. 13점은 ‘보물’로 지정돼 있다.
이번 전시의 백미는 ‘獨立(독립)’ 두 글자다. 독립을 향한 기백과 염원을 품고 있는 필치는 살아 움직이는 듯하다. 왼쪽에 작은 한자로 ‘경술년(1910년) 2월 여순감옥중 대한국인 안중근 서’가 씌어 있고 안 의사의 상징인 손바닥 도장이 선명하다. 박물관은 전시를 준비하면서 전시장 가운데에 가로 3m, 세로 4.5m 크기의 공간을 따로 만들었다. 박물관 측은 “안중근 의사의 핵심 사상은 독립과 동양 평화”라며 “전시장의 가장 중심 공간에서 그런 염원이 집약된 글씨를 만나볼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안 의사는 순국하기 한 달여 전에 간절한 염원과 굳은 의지를 담아 ‘獨立’이라는 글을 썼고 당시 뤼순감옥의 간수였던 시타라 마사오에게 남겼다. 시타라의 귀국 후 글들은 가족이 운영하는 절에 보관됐는데 이후 조카가 자신이 졸업한 류코쿠대학에 다른 3점의 안 의사 유묵과 함께 1997년 기증했다. 글씨의 존재는 2000년쯤 세상에 알려졌다. 2009년 국내에 처음 전시됐고 이번 전시는 15년 만이다.
특별전은 안 의사의 어린 시절 이름인 ‘응칠’(應七)에서 착안해 안 의사의 정신과 사상을 가문, 애국, 평화 등 7가지 이야기로 구성했다. 전시장에 들어서면 높이가 1.5m에 달하는 긴 족자 형태의 유묵이 관람객을 맞는다. 1910년 3월 뤼순감옥의 나카무라 계장에게 써줬다는 이 유묵에는 ‘황금백만냥 불여일교자’(黃金百萬兩 不如一敎子)라는 글씨가 쓰여 있다. 황금이 백만 냥이라도 자식에게 하나를 가르침만 못하다는 말이다. 이 글은 ‘명심보감’의 한 구절에서 유래한 것으로, 교육과 계몽에 힘써 실력을 양성시키려 한 교육가로서 안 의사의 철학을 보여주는 유물로서 가치가 크다. 애국심이 깃든 ‘국가안위 노심초사’(國家安危 勞心焦思), ‘위국헌신 군인본분’(爲國獻身 軍人本分) 글씨는 특히 눈길을 끈다.
전시는 생전 활동을 엿볼 수 있는 각종 기록과 사진, 신문 자료 등 50여 점을 함께 보여준다. 안 의사와 형제들이 삼흥학교를 설립했다는 소식을 전하는 1907년 대한매일신보 기사, ‘안응칠’ 수형표를 단 모습 사진, 안 의사의 ‘동양평화론’ 책자, 1962년 안 의사가 추서 받은 훈장 등이 공개된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23일 특별전 개막식 축사를 통해 “지금 우리의 삶은 선조들의 피와 투쟁으로 이루어진 것을 기억하고 또 기억해야 한다. 그분의 사상이 울림이 되어 더 높게 멀리 퍼져 나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개막식에는 강정애 국가보훈부 장관과 안중근의사숭모회 김황식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독립’ 글씨를 소장하고 있는 류코쿠대학 도서관의 다케우치 마사히코 관장은 “한국과 일본 사이에는 불행한 역사가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넘어서고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며 서로를 배워야 한다”고 소감을 밝혔다. 특별전은 내년 3월말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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