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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형물' 아닌 '독도 모형' 유감 [아트씽]

[정준모의 여기, 역이(逆耳)]

지하철역 '독도 모형' 철거논란

'독도의 날' 앞두고 3곳 재설치

실물모방 '모형'은 '조형물' 아냐

예술성 갖춘 '독도 조형물'있어야

전쟁기념관에 설치된 독도 모형




언제나 말없이 동해를 지키고 있는 독도는 잊을 만하면 소환되는 동네북이다. 소설가 한강이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것을 두고 상금 13억원을 독도에 기부한다는 ‘가짜뉴스’가 돌기도 했다. 영원한 한국의 땅 독도이건만 정치권에서는 늘상 시끄럽다. 독도를 자기 땅이라 우기는 일본이 새삼 꺼낸 억지 주장때문이 아니다. 우리나라가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우리 영토를 우리 내부에서 “누구 좋으라고”인지 모르겠지만, 스스로 문제를 만들고 키워 세계인의 이목을 끌어내 일본이 원하는 독도를 분쟁지역화 하는 일은 피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이는 일본의 주장에 동조하는 ‘친일’ 또는 ‘자해행위’와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태원역에 설치됐던 독도 모형. 서울교통공사는 24일 '10월25일 독도의 날'을 앞두고 노후한 독도 모형을 복원, 보완해 재설치 했다.


우리 땅 독도, 누가 왜 흔드나


그런데 이렇게 독도를 정쟁화해서 스스로 영토문제를 확대, 재생산하는 이들은 대한민국은 물론 세상의 모든 욕과 손가락질을 온몸으로 받아내는 “국가와 민족을 위해 일한다”는 여의도 정치인들이다. 이들은 남들이 먹기 싫어하는 세상의 모든 욕을 먹어야 하는 일을 직업으로 선택한 때문에 그 의무를 다하고자 욕먹을 일이 없으면, 스스로 욕먹을 일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실로 투철한 직업 정신이자 살신성인의 행동이다.

누구도 먹고 싶지 않은 욕과 비난을 주저함 없이 먹고 소화해 내야하는 극한직업에 종사하기 때문에 그들이 다소 과도한 특권을 누려도 국민은 이를 용인해준다. 그들은 발언과 표결의 자유를 누리며 불체포특권과 상당한(?) 아니 엄청난 세비와 기타 편익을 받을 권리를 인정받고 있다. 하지만 그들은 스스로 국회의원 하나하나가 독립된 헌법기관이라고 주장하면서 당론이라면 일사분란을 미덕으로 여겨 스스로 독립을 포기하고 당의 결정에 따르는 이중성을 특징으로 한다. 아무튼, 이런 정치인 특히 국회의원들은 간혹 어려운 한자성어를 사용하거나 아는 척하지만, 평소 그들이 말하고 행동하는 것을 보면, 인문학적 소양이나 문화예술에 대한 상식이 일반 국민의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따라서 그들이 가끔 사용하는 고사성어나 그럴듯한 말은 의원실에 포진한 총 9명이나 되는 보좌진들의 피와 땀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들의 힘도 미치지 않는 곳이 있는 모양이다. 제아무리 미술의 영역이 넓어지고, 무지를 인기의 밑천으로 삼는 일부 연예인들의 “예술이예요”라는 판단에 힘입어 세상에 깜도 안되는 예술이 넘쳐나도 예술이란 영역에는 변하지 않는 기본이 있다.

고추가 특산물인 고장이 지역의 상징이자 일종의 간판용 성격으로 고추 조형물을 세워뒀다.


모형과 조형물?


서울교통공사가 최근 서울지하철 6곳에 있던 독도 모형을 철거하자 일각에서 반발했고, 복원과 승객 안전을 위해 철거했다고 설명한 공사가 ‘10월25일 독도의 날’을 앞두고 24일 시청역·김포공항역·이태원역 3곳에 “독도 조형물 복원 설치했다”고 밝혔다.

지하철 역사에 설치됐던 ‘독도 모형’을 치운 것이 마치 독도를 일본에 넘겨준 매국 행위라도 되는 양 호들갑을 떠는 것은, 그들의 정치적 책무나 의무 또는 정치인으로서 생명연장을 위한 고육책이라고 넘어갈 수도 있겠지만 가장 이해할 수 없는 점은 독도의 ‘모형’을 ‘조형물’이라고 칭하는 점이다.

모형과 조형물은 비슷하지만 분명 다른 말이다. 다른 말을 같은 뜻으로 쓰다보니 정치가 정쟁이 되는 것처럼, 말과 단어란 분명히 그 뜻을 가려 써야한다. 조형물이란 ‘여러 가지 재료를 이용해 구체적인 형태나 형상으로 만든 물체’를 의미한다. 따라서 조형물이라면 조각상이나 기념탑 같은 예술작품을 의미한다. 따라서 조형물은 최소한의 격을 갖추어야 예술품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이에 반해 모형은 ‘실물을 모방하여 만든 물건’으로 예술성보다 실물을 얼마나 사실적으로 가깝게 재현했느냐가 중요하다. 예술적이기보다는 실용적인 측면이 강하다.

우리가 조형물과 모형을 구분하려면 대상이 되는 물체의 구조와 형태가 그 자체로 미적 가치를 지니고 있는가가 매우 중요하다. 형태(Form)는 작품의 주제를 효과적으로 전달하고 시각적 매력이 있어야 하며, 물체의 각 부분이 조화롭게 어우러지는 균형과 조화를 이루는 비례(Proportion)도 중요하다. 또 조형물은 그 시각적 균형(Balance) 즉 대칭 또는 비대칭, 그리고 물체를 구성하는 색상, 질감, 형태의 조화(Harmony)가 필요하다. 또 반복적인 시각적 리듬(Rhythm)을 통해 동적인 느낌을 주며, 특정 부분이 강조(Emphasis)되어 관람객의 시선을 끌 수 있어야 한다. 물체 표면의 시각적, 촉각적 질감(Texture)과 물체의 감정과 분위기를 좌우하는 색상(Color)의 선택과 조합도 필수적이다.

영주 특산물인 사과를 주제로 한 광고물.


TV 예능프로그램에 등장하는 연예인 중 한 사람이 “아, 예술이예요”라고 규정했다고 모두 예술이 되는 것이 아니고, 침대가 과학이 될 수 없듯 세상의 무엇인가가 예술이 되려면 최소한의 조건을 갖추어야 한다. 예술의 조건은 매우 다양하고 복잡하지만, 일반적으로 새로운 아이디어와 표현 방식을 통해 독창성을 발휘하는 것이기 때문에 창의적(Creativity)이며, 자신의 아이디어를 표현하는 기술(Skill)이 필요하다. 예술은 관객에게 감정(Emotion)을 전해 감동을 주어야 한다. 또한 사회적, 문화적, 개인적 맥락에서 각기 달리 해석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나 의미(Meaning)가 있어야 한다. 여기에 예술품은 시각, 청각적 아름다움 즉 미적 가치(Aesthetic Value)가 필수적이다. 기존의 형식을 깨고 새로운 시도를 하는 매우 중요한 조건인 혁신(Innovation)도 소중하다. 마지막으로 예술은 관객과 소통을 통해 그 가치를 발현하는 것이기 때문에 소통(Communication)은 꼭 필요하다.

이렇게 중학교 미술 시간에 배웠던 것을 새삼스럽게 적어 본 것은, 오늘날 우리가 당연하게 알고 있던 문화예술관련 용어들이 심각할 정도로 오염되고 왜곡되어 사용되면서 ‘별의별’ 것들이 예술 또는 작품으로 용인되거나 통용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 조형물이란 용어도 3차원의 조소 작품을 지칭하는 말이었지만, 오늘날 한국에서는 입체적인 간판이나 인공폭포, 인조바위, 지역 특산물의 모형, 캐릭터 즉 일종의 규모가 있는 간판 정도의 의미로 쓰인다. 또 이들 간판형 조형물의 경우 작품의 주체라 할 작가 즉 예술가가 없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리고 주로 이런 류를 제작하는 곳의 업태가 조경시설물설치공사업 면허나 산업디자인 전문회사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여의도한강공원에 설치돼 있는 영화 ‘괴물’ 속 괴물 조형물.


독도 모형의 실상


따라서 지하철 역사에 놓여있던 독도 모형은 ‘모형’일 뿐 ‘조형물’이라 할 수는 없는 수준의 것이다. 정치인들의 눈에는 지하철 역사 독도 모형이 ‘조형물’처럼 보였는지 모르겠지만 이는 조형물의 기준에 부족했다. 가까이 있는 안국역 독도 모형을 자주 볼 기회가 있었는데 볼 때마다 너무 허술해 조금 화가 났던 기억이 있다. 그곳 독도 모형은 실물을 700분의 1로 축소한 것으로 진열장의 크기가 너비 1.8m, 깊이 1.1m, 높이 0.9m에 불과해 매우 왜소했다. 이렇게 작은 모형을 지하철역 통행이 비교적 적은 제법 넓은 공간에 설치해 놓은 탓에 상대적으로 더 작게 보였다. 우리의 땅이라는 사실을 당당하게 알리고 주장하기 위해 설치했다면 규모 있게 만들어 번듯하고 당당하게 설치하는 것이 옳았다.

독도에 대한 사랑과 나라의 영토를 지킨다는 결의가 말로는 충천하지만, 실제 독도 모형은 매우 작고 협소하고 때로는 왜소한 느낌이 들어 결연한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 속이 상했다. 특히 독도 이슈가 나오면 목에 핏대를 세우는 이들은 왜 이렇게 빈한한 모습의 독도 모형에는 입을 다물었을까. 왜 이렇게 창피한 수준의 독도 모형을 바꾸자는 주장은 하지 않았을까.

안국역에 설치됐던 독도 모형은 제작 후 15년이 지나 색이 바래고 낡았다.


독도 모형도 조악했지만, 전시된 모형을 보호하기 위해 박물관 전시 캐비닛(Museum Display Cabinets)을 모방해 만든 진열장(Showcases)은 일반 유리로 만들어져 지하철 이용객 중 누군가가 넘어지기라도 하면 깨져 다치는 사람이 발생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적어도 유리케이스에 안전필름이라도 붙여 이런 사고를 예방하려는 조치가 필요했는데 그런 조치는 없었다. 진열장 내 조명기구는 조악하기 그지없었다. 몇 달째 조명기가 고장 나 켜지지 않는 경우도 많았다. 이미 제작 설치된 지 10 수년이 지나면서 적외선 자외선 차단장치도 없는 역사 내 조명등에 노출된 모형은 색이 바래고 번져 있었다. 많은 사람이 들고나는 지하철역이다 보니 먼지가 진열장 위에 수북히 쌓이고, 간혹 청소하면, 물걸레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그래서 지하철 역사의 독도 모형은 ‘독도에 대한 모독’이라는 생각마저 들 정도였다.

독도 모형의 철거를 두고 마치 독도를 일본에 내어주기라도 한 듯 호들갑을 떠는 이들을 보면서, 이렇게 독도 모형이 지하철 역사에서 먼지를 뒤집어쓰고 조명도 나간 채 방치되는 천대 아닌 천대를 받고 있을 때 누구 하나 나서서 시정을 요구하는 것을 보고 들은 적이 없는 데, 갑자기 이렇게 독도 모형에 진심인 듯한 이들이 나타나 놀랐다.

민간 모형사가 제작하고 기증해 안국역에 설치된 독도 모형. 진열장 유리에 조명이 반사돼 정작 내용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문제가 된 독도 모형은 실은 국가나 서울시 예산으로 제작 설치한 것이 아니었다. 당시 기사를 보니 2009년 한 서울시의회 의원이 ‘독도수호를 위한 서울시 대책마련 촉구 건의안’을 발의한 후 당시 민간업체인 ㈜강남디자인모형이 1점당 약 2천만 원 정도의 제작비를 들여 만든 모형을 서울교통공사(구 서울메트로)에 기증한 것이었다. 서울교통공사는 이를 잠실역과 시청역, 광화문역, 종로3가역, 이태원역, 김포공항역 등 6곳에 설치했고, 1,3,5호 선이 교차해 혼잡도가 높은 종로3가역의 모형은 안국역으로 옮겼다 한다. 전쟁기념관 독도모형도 2012년 기념관이 기증받아 전시해 온 것이라 한다.

당당한 독도조형물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그리고 우리나라의 천연기념물인 독도를 알리고 기억하려면 모형이 아닌 조형물을 만들어 세워야 할 것이다. 당당하고 아름다운 독도 그 자체를 넘어서는 스스로가 승화된 예술작품으로 말이다. 독도 조형물은 예술적인 아름다움 즉 아우라를 지녀, 보는 이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어야 한다. 또 설치되는 장소와의 조화를 고려해야 한다. 물론 독도조형물이 설치될 장소의 면적이 적절해 너무 왜소해 보이거나, 너무 커 보여서 권위적이어서도 안된다. 또 재료는 항구적이며 설치는 안전해야 한다. 만약 향후 독도조형물을 만들어 세워 독도가 한국의 영토임을 널리 알리고 일본의 허구적 주장을 혁파하려면 일반적인 독도에 대한 의미나 상징을 넘어 민족사적, 문화사적, 인류사적, 문명사적 의미와 상징성을 지닌 작품으로 당당하게 제작해 이를 통해 우리의 주장과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이다.

민간 모형사에서 제작해 기증한 독도 모형. 실물을 모방해 만드는 '모형'의 역할에 충실할 뿐 미적 가치는 없어 '조형물'이라 부르기는 어렵다.


사실 수년 전 독일에서 우리나라 민간단체가 독도가 우리나라 영토임을 알리는 전시와 공연과 함께 하는 것을 보았다. 그런데 당시 전시된 독도 모형은 스티로폼으로 만들어 수성페인트를 칠한 것이었다. 이런 수준의 근본도 없는 모형을 가지고 얼마나 독일사람들을 설득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니 얼른 그 자리를 벗어나고 싶었다. 독도에 대한 이런 대접이 미안했다.

주장도 중요하고 알리는 것도 소중하지만 최소한 우리 스스로 독도에 대한 예의를 갖춘 다음 전시도 공연도 해야 했던 것 아닐까. 우리 스스로 이렇게 독도를 막 대하면서 우리 땅이라고 주장하는 것이 설득력이 있을까. 이런 정도의 수준에서 독도가 우리 땅이라고 홍보한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나는 것은 아닐까.만약 새롭게 독도조형물을 제작한다면 당대 한국을 대표하는 작가를 선정해서 후대에 물려주어도 손색이 없는 문화재급 미술작품 즉 조형물로 제작할 것을 제안한다. 재료도 항구적인 청동이나 기타 금속재료를 사용하고, 크기도 번듯하게 하나를 만들어 세워도 능연하고 떳떳하게 해보자. 다만 너무 과하지는 말자. 일본을 넘어서는 우리의 국력을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굉장하고 훌륭한 독도조형물을 상상해 본다. 제작에 필요한 경비는 국민성금을 모으는 것도 방법이겠지만, 독도 모형 철거했다고 기함했던 정치인들이 세비도 많은데 솔선수범해 그들의 진정한 독도 사랑을 보여주는 십시일반도 방법일 터이다. 내가 사랑하는 우리의 독도가 당당한 조형물, 미술작품으로 거듭나는 날이 기다려진다. 그전에 제아무리 바빠도 독도 덕에 모형과 조형물은 구분할 줄 아는 교양인이 되어보자.

이탈리아의 '리볼리성 동시대미술관'에 전시중인 미술관 모형.


▶▶필자 정준모는 미술평론가이자 한국미술품감정연구센터(KAAAI) 대표다. 동숭아트센터와 토탈미술관 큐레이터로 시작해 제1회 광주비엔날레 전문위원과 전시부장을 맡았다. 이후 1996년부터 2006년까지 국립현대미술관의 최장수 학예실장을 역임하며 근현대미술의 중요한 전시들을 기획했다.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 서울시 공예박물관 등 국내 여러 미술관 및 문화기관 설립에 중추적 역할을 한 행정가이기도 하다. 현재는 미술품 감정및 미술비평, 저술활동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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