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의 부실수사로 미제로 남았던 고(故) 염순덕 상사 사망 사건의 유족에게 국가가 정신적 피해 보상 등 배상을 해야 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왔다.
28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27부(손승온 부장판사)는 염 상사 유족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소송에서 “국가가 총 9000만 원을 배상하라”고 이달 18일 판결했다.
재판부는 “헌병대와 경찰이 사건 발생 초기에 핵심 물증과 증인을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부실하게 수사를 진행해 증거 확보가 매우 미흡했다”며 “현재까지도 망인을 살해한 범인, 살해 경위 및 동기 등이 정확히 규명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하며, 수사기관 등의 직무상 불법행위로 인한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다”고 판시했다.
염 상사는 육군 수도기계화보병사단 소속으로, 2001년 12월 11일 당시 같은 부대 준위 A씨와 국군기무사령부 소속 중사 B씨와 술자리를 가졌다. 염 상사는 술을 마신 후 귀가하다가 둔기에 맞아 숨졌고, 사망 현장 근처인 하천 자갈밭에서는 염 상사의 피가 묻은 대추나무 가지가 발견됐다. 도로변에서 수거된 담배꽁초 2개에서는 A씨와 B씨의 유전자가 검출됐다. 이로 인해 두 사람이 유력 용의자로 지목되었으나, 헌병대는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감정 결과를 불신하며 해당 증거들을 수사에서 제외했고, 범행 도구로 지목된 대추나무 가지도 분실했다.
약 15년간 미제로 남아있던 이 사건은 살인사건 공소시효를 폐지한 ‘태완이법’이 2015년 7월 시행됨에 따라 재수사 대상이 됐다. 경찰은 A씨와 B씨의 알리바이가 조작되었음을 확인하고 이들을 피의자로 입건했다. 이 과정에서 B씨는 차 안에서 번개탄을 피워 숨진 채 발견되었고, A씨는 증거 부족으로 불기소 처분됐다.이에 염 상사 유족들은 2018년 9월 “망인이 A와 B에 의해 살해됐음에도 수사기관의 부실수사로 오랜 기간 사건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망인의 사망과 관련해 보훈보상대상자 인정이 지연돼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입었다”며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은 “부실수사가 있었던 2002년 5월경부터 5년이 경과한 2018년 9월 13일에 이 사건 소가 제기되어 청구권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청구권 소멸을 주장한 국가 측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가재정법에 따르면 국가의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한 손해배상청구권은 불법행위를 한 날로부터 5년이 지나면 시효가 소멸된다.
재판부는 “유족들은 적어도 이 사건이 발생한 후 경찰의 재수사 결과가 나온 2018년 7월 9일경까지는 이 사건 수사기관의 위법행위를 파악하기 어려워 손해배상청구권을 행사하는 것이 불가능했다고 보아야 한다”며 “권리를 행사할 수 없는 장애사유가 해소된 2018년 7월 9일경으로부터 시효정지 기간에 준하는 6개월이 지나기 전인 2018년 9월 13일에 소를 제기한 사실은 명백하다”고 유족 측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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