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여행을 가장해 필리핀에서 30여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대량의 마약류를 국내로 반입한 A 씨 등 일당이 경찰에 붙잡혔다.
서울 강남경찰서는 필리핀에서 필로폰·케타민 등 마약류를 국내로 반입·유통한 A(33)씨 등 4명을 마약류관리법 및 특정범죄가중처벌법 위반(향정) 혐의로 검거하고 지난달 27과 이달 25일 순차적으로 구속송치 했다고 29일 밝혔다. 이들로부터 필로폰을 매수해 투약한 강남 소재 유흥업소 직원 L(24)씨도 마약류관리법 위반으로 지난달 20일 구속송치 됐다.
경찰에 따르면 A 씨 등 4명은 ‘고액 아르바이트’ 광고를 통해 모집된 후 서로 알지 못한 채 텔레그램 대화방 운영자인 총책으로부터 직접 지시를 받고 마약류 밀반입·판매·운반 역할을 수행했다.
밀반입책 A 씨는 가족여행을 가장해 부인·자녀들과 필리핀으로 출국한 후 현지에서 마약류가 담긴 가방 6개를 전달받아 4차례에 걸쳐 국내로 들여온 것으로 조사됐다.
A 씨가 노린 것은 입국 시에는 따로 수하물 검사를 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필리핀에서 출국할 때 마약류가 든 가방에 바나나칩 등 과자류를 잔뜩 넣어 엑스레이로 가방 속 내용물을 식별하기 어렵게 한 이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할 때는 가족들의 손을 잡고 태연하게 걸어나왔던 것으로 전해졌다.
A 씨는 현재 가족들의 범죄 가담 여부를 부정하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하지만 경찰은 마약류 밀반입 이전 이미 A 씨가 필리핀 총책의 지시에 따라 자택에서 2개의 중계기와 수십 대의 휴대전화를 이용해 주식리딩방을 운영하고 있었다는 점, 마약류 밀반입을 위해 4차례 필리핀을 오고 갈 때 모두 가족들과 함께 했다는 점 등으로 미루어 부인이 A 씨의 범행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재 A 씨의 부인은 전기통신사업법 위반 혐의로 입건된 상태이며 마약류 밀반입 혐의에 대한 수사도 진행될 예정이다.
또 다른 피의자 B(45)씨와 C(29)씨는 A 씨가 경북 경주에 은닉한 필로폰과 케타민을 각각 소분·개별포장해 인근 야산에 묻었다. 운반책 K(21)씨는 이를 서울·경기·충청 등지의 주택가에 뿌리는 이른바 ‘드라퍼’ 역할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은 최초 이들 일당이 반입·유통한 마약류를 공급받아 투약한 L씨의 자진 신고로 지난달 10일 본격적인 수사에 착수했다. 일반적으로 총책이나 중간책을 시작으로 하향식 수사를 진행해 투약자와 운반책들을 잡아 들이지만 이번 사건은 투약자의 진술을 토대로 운반책, 판매책, 반입책을 줄줄이 검거한 사례다.
경찰은 L씨 진술을 토대로 A 씨 등 반입·유통책을 검거하는 과정에서 필로폰 6.643kg, 케타민 803g 등 35억 원 상당의 마약류가 필리핀에서 한국으로 4차례에 걸쳐 밀 반입된 사실을 인지하고, 이 중 시중에 유통되기 전에 발견된 필로폰 3.18kg과 케타민 803g을 압수했다. 압수된 마약류는 18억원 상당이며 14만 명이 투약할 수 있는 양이다.
또 이들이 ‘던지기’ 방식으로 필로폰을 은닉한 71개소를 파악하고 수색에 나서 총 58개소에서 1g씩 소분된 58g의 필로폰을 회수했다.
현재 경찰은 조사 내용을 바탕으로 상선과 다른 조력자 및 매수·투약자들에 대해 수사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김동수 서울강남경찰서장은 “가족여행을 가장해 해외로 나가 마약류를 들여오고 국내에 융통한 것을 직접 확인한 사례다”면서 “국민의 평온한 삶을 파괴하는 마약류 범죄에 대해서는 철저한 수사로 끝까지 추적해 엄단하겠다”고 강조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