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 년간 일본에서는 부하직원들의 육아와 가정까지 챙기는 상사, '이쿠보스(육아+보스)'가 화두다. 도쿄 치요다구 본사에서 한일 양국의 취재진을 맞이한 시바야마 카요코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 인사부 과장은 "육아휴직 응원수당 제도는 후나바키 신이치로 최고경영자(CEO)로부터의 '톱다운' 방식이었기 때문에 굉장히 순조롭게 도입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이 회사가 지난 2023년 4월 일본 기업 최초로 도입한 '육아휴직 응원수당'은 육아휴직을 떠난 직원의 일을 분담하는 동료들에게 지급하는 수당이다. 눈치 보며 육아휴직을 신청할 필요가 없도록, 출산과 육아휴직을 진심으로 축하해줄 수 있도록 남은 직원들에게 보상을 제공하는 것이다. 규모가 작은 부서일수록 더 많은 수당을 지급, 1인당 최대 10만 엔(약 91만 원)까지 받을 수 있다. 부서 내에 육아휴직을 떠나는 동료가 두 명이면 물론 두 배다.
시바야마 과장은 "제도 도입 이후 사내 설문조사를 해보니 자녀를 2명 이상 낳아도 걱정 없이 육아휴직을 쓰겠다는 분위기가 확산됐다"며 "이런 분위기의 회사라는 사실이 기업 이미지에도 플러스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후 삿포로맥주, 다카라토미 등 일본 기업 십수 곳이 잇따라 육아휴직 응원수당을 도입했다.
미쓰이스미토모해상화재보험뿐만 아니라 많은 기업들이 일과 가정의 양립을 위해 새로운 시도를 하고 있다. 임원들이 '이쿠보스'를 자처하는 800여명 규모의 상조기업 조인은 2022년 직원들의 육아휴직 사용률이 남녀 모두 100%를 달성했다. 육아휴직을 사용하면 오히려 인사평가에 가점을 줬기 때문이다. 이 회사 관계자는 "육아휴직, 돌봄휴가 등을 눈치보지 않고 쓰다 보니 서로 흔쾌히 업무를 나눠 맡게 되고, 이 과정에서 직원 간 소통도 활발해졌다"고 전했다. 아이치현 나고야에 위치한 레고랜드 재팬은 경영진들이 주도해 주4일제를 도입했다. 주40시간 근로를 유지하면서 주3일을 쉬는 '총노동시간 유지형', 근로 시간을 줄이고 급여를 적게 받는 '보수 삭감형' 중 선택 가능하다. 직원마다 상황에 맞춰 고를 수 있는 선택지를 다양화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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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사키 시로 내각관방실 참여는 기업 경영진이 주도하는 변화가 핵심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저출생으로 인해 근로자뿐 아니라 소비자도 줄어 기업이 생존하기 힘든 사회가 올 수 있다”며 “핵심적인 변화는 기업의 경영진이 책임지고 이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일본은 서로 눈치를 많이 보다 보니 육아휴직을 도입해도 제대로 못 쓰는 분위기가 있었고, 실제로 일본과 미국·스웨덴 국민들의 인식을 조사한 결과 일본은 제도가 바뀌어도 사람들이 바뀌지 않는다는 결론에 도달한 하버드대 연구 결과도 있다”며 “사회 전반의 압박이 심하다보니 제도뿐만 아니라 사회의 규범이 바뀌어야만 효과를 발휘하는 상황이고, 그래서 CEO의 판단과 행보가 관건"이라고 강조했다. 시로 참여는 “이전까지는 모두가 일에 매진해 경제성장을 일궈냈지만 이제는 인식을 바꿔야 할 때”라며 “저출생이라는 경고를 계기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어떤 사회를 꾸려나갈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본 기획물은 정부광고 수수료로 조성된 언론진흥기금의 지원을 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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