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전통건축이 외세의 강압과 전쟁 등 타의에 의해 단절되거나 훼손되지 않고 자발적으로 계승 발전됐다면 어떤 모습일까. 올해 한국건축문화대상 학생 설계공모전 최우수상 작품으로 선정된 ‘한옥, 공동주택을 상상하다’는 이 같은 상상에서 출발했다. 그 결과 한옥을 쌓아 올린 모습의 다세대형 공동주택이라는 새로운 주거형태를 도출했다. 작품을 보면 전체적인 구성은 저층부와 코어, 거주공간으로 구분된다. 저층과 코어 부분은 철근콘크리트로 처리하고, 거주 공간은 한식 목구조로 구축한 게 특징이다. 한옥을 쌓아 올리면서 발생하는 구조적 안정성 문제를 철근콘크리트를 사용해 해결했다. 내부 거주공간에는 복층형 한옥과 융통형 한옥 두 가지 형식의 세대 평면을 제시한다. 각 세대 마당에는 거실과 누마루를 계획해 일반 공동주택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반(半) 외부 공간을 구현한 것이 돋보인다.
작품의 배경은 서울 종로구 익선동이다. 익선동은 고(古) 한옥들이 다수 위치한 한옥 보존 구역이다. 경관이 우수하고 우리 한옥의 문화와 역사가 녹아 들어있는 곳으로 꼽히지만, 공사비 부담 등에 방치되는 한옥들이 늘어나고 있는데 주목했다. 또 익선동은 외국인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 관광지로, 골목을 통해 방문객들의 동선이 자유롭고 유동적이라는 점에서 도심 속 한옥 주거 지역으로 알맞다고 판단했다. 현행법에 맞게 건물 높이는 5층 이내로 제한했다.
한옥의 정체성을 계승하기 위해서 처마와 툇마루, 대청마루, 화담 등의 요소를 적용했다. 그러면서도 신한옥 공법을 사용한 게 눈길을 끈다. 건식 벽체와 층간소음 및 진동 방지를 위한 방진 패드, 벽체와 기둥 간의 접합부에 기밀성을 확보한 게 대표적이다. 특히 작품은 단층의 한옥을 쌓아 올리는 만큼 생겨나는 공간을 임대해 공사비를 해결하는 방안도 제안한다.
임정현 씨는 “한국형 목구조로 이뤄진 주거단지로 개성 있는 동네 이미지를 연출하면 콘크리트 숲으로 이뤄진 기존 다가구 주택의 도시 이미지를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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