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금융 당국 통보 닷새 만에 압수수색 등 강제수사에 가속을 붙인 배경에는 ‘시세조종 등 불공정거래를 엄중 처벌해야 가상자산 시장의 건전성을 확보할 수 있다’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국내 가상자산 시장 이용자 수는 2021년 558만 명에서 지난해 말 645만 명까지 느는 등 해마다 급증하는 추세다. 하지만 올 7월 19일 가상자산 이용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되기 전까지는 시세조종에서 이용자를 보호할 제도적 장치가 전무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시세조종에 대한 처벌 규정이 명확해지자 금융·사정 당국이 일벌백계를 위한 행동에 나선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법조계 안팎에서는 시세조종에 대한 처벌 규정을 담은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 이후에도 이상 징후가 연이어 포착되고 있어 향후 금융·사정 당국이 동시다발적 수사에 본격 착수할 수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1일 법조계에 따르면 금융 당국은 지난달 25일 패스트트랙 절차에 따라 가상자산 시세조종 사건을 검찰에 통보했다. 이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시행된 지 100일 만이다. 이후 서울남부지검 가상자산합동수사단(단장 박건욱 부장검사)은 통보 닷새 만인 지난달 30~31일 30대 남성 A 씨의 주거지·사무실 등 7곳을 압수수색하며 즉각 강제수사에 착수했다.
금융 당국은 A 씨에 대한 조사 과정에서 드러난 범행 방식이 시세조종의 전형이라고 지목한다. 금융 당국의 조사 결과 A 씨가 높은 가격에 대량의 매수 주문을 내놓는 등 다른 이용자를 꾀기 위한 매매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일정 조건 충족 시 자동으로 매매하는 자동매매주문(API) 시스템을 통해 거짓으로 사들인다는 주문도 반복 제출했다. 지속적인 시세조종으로 해외 가상자산 발행 재단에서 전송받은 코인을 국내 가상자산거래소에서 비싼 값에 팔려는 의도였다. 시세·거래량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해당 코인에 투자자들이 몰리는 듯 가상자산 이용자를 속이는 방식이다. A 씨가 이 같은 수법으로 얻은 부당이득 규모는 수십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대용량 매매 데이터 분석 플랫폼을 구축한 덕분에 조사도 두 달 만에 마무리할 수 있었다”며 “이전에는 가상자산조사심의회와 금융위원회의 의결을 모두 받아야 했는데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내 ‘긴급조치절차(패스트트랙)’가 도입되면서 수사기관에 사건을 빠르게 통보할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이 제정·시행되면서 처벌 근거가 마련됐고 동시에 패스트트랙 등 세부 처리 규정이 담긴 ‘가상자산시장조사업무규정’이 신설돼 신속한 조사와 통보가 가능해졌다는 얘기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의 골자는 미공개 중요 정보 이용, 시세조종, 부정 거래 등 불공정거래 행위를 금지하고 이를 위반한 자에 대해서는 형사처벌·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들 불공정 행위가 적발될 경우 1년 이상의 징역이나 부당이득의 3~5배에 달하는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특히 부당이익 규모가 50억 원 이상이면 최고 무기징역 선고도 가능하다. 가상자산시장조사업무규정에는 수사기관에 즉시 통보가 필요하거나 혐의자의 도주·증거인멸 등이 예상되는 경우 패스트트랙을 이용할 수 있다는 내용이 담겼다.
전문가들은 가장자산의 시세조종 등을 처벌할 근거가 명확해진 만큼 향후 금융·사정 당국의 조사 및 수사가 본궤도에 진입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하루는 물론 단 몇 시간 사이에도 가상자산 가격이 급등락하는 이상 흐름이 일부 종목을 중심으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난해 말 상장된 B 코인의 경우 하루 만에 2000원대에서 4000원대로 급등했다. 거래량도 이른바 ‘고무줄’로 수천 건에서 수만 건대를 오가더니 단 며칠 만에 5000원대를 돌파하기도 했다. C 코인 역시 올 초 상장 때만 해도 200원대를 오갔으나 단 며칠 만에 300원대로 뛰더니 곧장 400원대로 폭등했다. 두 종목의 공통점은 거래 가격이 단시간 내 제자리로 돌아왔다는 것이다. 이상 급등했다가 짧은 시간 내 상장 때와 동일하게 정해졌다.
검찰 출신의 한 변호사는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 시행으로 처벌 근간이 마련되면서 금융·사정 당국도 조사·수사 엔진을 본격 가동하고 있다”며 “이상 급등 등 시세조종과 마찬가지로 증권시장에서 성행하던 리딩방 등까지 텔레그램 오픈채팅방에서 등장하고 있어 한층 신속한 금융·사정 당국의 조사와 수사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