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내년도 예산안 시정 연설에 불참하기로 가닥을 잡으면서 대통령실과 국회의 불화는 출구 찾기가 한층 어렵게 됐다. 22대 국회가 시작된 지 7개월이 흘렀지만 윤 대통령은 국회를 대표하는 우원식 국회의장과 별도 만남조차 하지 않고 있다. 임기 반환점을 앞두고 4대 개혁과 민생 챙기기를 적극 주문한 윤 대통령이 ‘반쪽 국정’ 우려를 키운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3일 서울경제신문과 통화에서 “시정연설에 대비한 별도의 실무 준비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이 1일 “(시정연설에) 국무총리가 나가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힌 뒤에도 일각에선 극적 참여 가능성이 제기됐으나 불참에 무게를 실은 것이다.
이로써 2013년 이후 11년 간 이어진 ‘대통령 시정연설’ 관례는 깨질 가능성이 커졌다. 대통령실은 거부권 법안 재발의 등 제대로 된 역할을 수행하지 못하는 국회가 정상화되기 전 시정연설은 무의미하다고 본다. 또 ‘대통령 망신주기’에 힘 쏟는 야당의 행태 역시 불참을 결정한 배경이다.
추경호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시정연설 총리 대독’ 방침을 전하며 “민주당이 대통령을 탄핵하겠다고 거리로 나서는 데 차분한 시정연설이 되겠느냐”며 “정쟁의 한 장면만 연출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정치권에선 대통령실과 국회의 대결 국면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대통령이 시정연설을 위해 국회를 찾으면 국회의장, 여야 지도부와의 차담이 이뤄지기 마련이다. 정치 지도자들이 현안 인식과 해법을 공유하며 대치 정국의 긴장감을 덜 수 있는 기회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실제 윤 대통령과 우 의장은 22대 국회 출범 후 다섯달이 넘었지만 별도 만남조차 갖지 못할 만큼 정국은 꽉막혀 있다. 대통령과 국회의장의 공관도 한남동에 인접해 있지만 오·만찬 등 비공개 만남 역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과 여의도간 거리가 한 층 멀어지면서 이달 10일 임기 반환점을 맞는 윤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부담은 한층 커지게 됐다. 당장 내년 예산안 처리에 국회의 협조가 절실하고, 주요 경제·민생 법안 통과는 물론 정부 조직개편과 행정·사법부 주요직 인선에도 협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야당은 ‘정치를 한 단계 더 후퇴시켰다’고 윤 대통령을 몰아붙였다. 강유정 민주당 원내대변인은 “22대 국회 개원식도 오기 싫고 시정연설도 하기 싫다니 대통령 자리가 장난이냐”며 “4일 시정연설에서 최소 의무를 다하는 모습을 기다리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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