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이 끝났지만 관객들은 쉽사리 자리를 뜨지 못했다. 7분 넘게 박수갈채가 이어졌고, 커튼은 몇 차례나 열리고 닫히길 반복했다. 지난 1일 세계적인 발레스타 박세은(36)과 김기민(32)이 무대에 오른 ‘라 바야데르’ 공연장에서 벌어진 일이다.
국립발레단 ‘라 바야데르’는 지난달 29일부터 3일까지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났다. 이 중 전석 매진 기록을 세운 박세은과 김기민은 11월 1일과 3일 두 번 무대에 섰다.
하늘을 나는 듯한 점프, 다시 볼 수 없는 슈퍼스타들의 발레
‘라 바야데르’는 인도 힌두사원을 배경으로 아름다운 무희 '니키아'와 젊은 전사 '솔로르'의 공주 비극적인 사랑을 다룬 작품이다. 막이 오르고 전사 ‘솔로르’ 역을 맡은 김기민은 마치 하늘을 나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부드러운 그랑주테(다리를 앞뒤로 크게 벌리며 점프하는 동작)를 선보이며 등장했다. 그는 그 어떤 발레리노보다 높이, 멀리 날아오르며 관객들을 놀라게 했다. 이어 무희 ‘니키야’가 등장하는 ‘사랑의 맹세’에서 박세은과 김기민은 환상적인 파드되(2인무)를 펼쳐보였다. 두 사람은 공연 전 총 3회밖에 리허설을 하지 못했지만 실제 사랑하는 연인이라도 되는듯 표정과 손짓, 몸짓으로 아름다운 사랑의 대화를 이어갔다. 박세은의 ‘아라베스크(한 쪽 다리를 뒤쪽으로 들어 올려 균형을 잡고 서는 동작)’는 마치 오르골 속 인형처럼 우아하고 아름다웠다. 1막에서 두 사람은 배우 못지않은 연기력으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1막에서 니키야와 애절한 사랑의 밀회를 나눈 솔로르는 2막에서 왕국의 공주 ‘감자티’와 약혼하며 돌변한다. 사랑하는 사람을 두고 어쩔 수 없이 다른 사람과 약혼해야 하는 솔로르의 마음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는 게 관건이다. 김기민은 독무를 통해 이 장면에서 솔로르의 고뇌를 표현했다. 그는 드넓은 무대에서 공중부양 하는 것처럼 점프하며 뛰어다녔고, 관객들은 쉴 새 없이 감탄사를 터뜨렸다.
박세은·김기민이 화려한 춤사위로 무대를 장악한 덕분에 다른 무용수들 역시 열정 가득한 분위기에서 연기를 펼치며 관객들의 몰입을 이끌어 냈다. 감자티 역을 맡은 안수연은 부상으로 넘어지는 실수를 했지만, 관객들은 그가 등장할 때마다 환호하며 응원을 아끼지 않았다.
섬세한 구성과 개연성 있는 기획으로 관객 사로잡아
‘라 바야데르’는 국내 양대 발레단인 국립발레단과 유니버설 발레단이 비슷한 시기에 같은 장소에 공연을 올리며 화제가 됐다. 지난달 공연한 유니버설 발레단은 1877년 클래식 발레의 아버지 마리우스 페티파가 만든 원작에 기반한 작품을 선보였지만, 국립발레단은 2013년 러시아 안무가 유리 그리고로비치가 창작한 안무를 사용해 무대를 꾸몄다.
유니버설발레단은 거대한 소품과 화려한 안무로 관객들에게 ‘쇼’에 가까운 볼거리를 제공한 반면 국립발레단은 모든 장면에서 스토리의 개연성을 살리는데 주력했다. 연인을 두고 약혼을 한 후 다시 옛 연인을 찾아 망령들의 세계에 빠진 솔로르의 감정 변화는 김기민의 실력뿐 아니라 섬세한 구성 덕분에 더욱 설득력을 가졌다. 국립발레단 ‘라바야데르’의 결말은 유니버설발레단 공연과 달리 비극으로 끝난다. 3막 끝부분에서 박세은은 열정적인 춤사위로 솔로르 김기민에게 ‘꿈에서는 만났지만 현실에서는 만날 수 없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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