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대선을 하루 앞둔 4일(현지 시간) 수도인 워싱턴DC 백악관 등 주요 시설 주변에서는 높이가 2m 정도 되는 검은색 보안 펜스 설치 작업이 한창이었다. 백악관 근처 펜실베이니아 애비뉴에 있는 사무실과 주요 상권 앞에는 입구 주변으로 대형 나무 합판벽이 들어섰다. 근처를 지나가던 시민은 “정치적으로 어디에 속해 있든지 두렵고 답답한 상황”이라며 한숨을 내쉬었다.
미 역사상 유례없는 접전이 펼쳐진 대선을 앞두고 수도인 워싱턴DC 주요 시설과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의 관저가 있는 해군 천문대, 공화당 후보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거주지인 플로리다 팜비치 등을 중심으로 보안이 대폭 강화됐다.
선거 과정에서 미국 사회의 극심한 정치 양극화를 고려하면 승패 결정 이후 대규모 폭동 사태가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021년 ‘1·6 의회 폭동’을 주도했던 극우단체 ‘프라우드 보이스(PB·Proud Boys)’가 지역별로 재결집하고 있으며 선거 이후 폭력적인 행동에 나설 가능성이 높다고 우려했다.
해리스가 대선 당일 밤 모교인 하워드대에서 개표 상황을 지켜볼 것이라 예고한 가운데 경찰은 대학 주변 도로를 통제하고 주차를 금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건물주들과 사업체들도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민간 경비를 강화하는 한편 창문이나 입구 보안을 강화해 혹시 모를 약탈이나 폭동 가능성에 대비하고 있다고 워싱턴포스트(WP)가 전했다.
워싱턴DC 담당 경찰은 대선 기간 3300명의 경찰 병력이 12시간씩 2교대 근무를 하며 수도를 철통같이 지킬 방침이라고 밝혔다. 파멜라 스미스 경찰청장은 “우리는 선거기간 어떤 폭력도 용납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대선에 막강한 영향을 미칠 경합주에서도 개표 시설 관리에 비상이 걸린 분위기가 역력했다. 4년 전 대선 직후에도 트럼프의 선동으로 ‘도둑질을 멈추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개표소를 위협하는 극성 지지자들이 목격됐던 만큼 이번 선거에서는 미국 전역의 수백 개 선거 사무실에 방탄유리와 강철 문 등이 설치됐다.
대선을 하루 앞두고 기자가 만난 미국 시민들은 각자 투표할 후보를 마음 속에 정했지만 결과는 예측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공통적으로 보였다. 뉴저지주 듀몬트에 거주하는 중년의 백인 여성은 “트럼프는 이해할 수 없는 언행을 하기 때문에 해리스를 지지한다”며 “선거 결과는 예측할 수 없지만 해리스가 승리하기를 바랄 뿐”이라고 말했다. 뉴욕 맨해튼 투표소에서 만난 고령의 흑인 남성 역시 “해리스는 지적인 인물”이라며 “미국의 민주주의가 훼손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며 민주당 지지 의사를 밝혔다. 반면 뉴저지의 한 시민은 “이민 문제에 대한 공화당의 시각에 완전히 공감한다”고 말했다.
전통적으로 민주당 지지세가 강했던 뉴욕 일대 한국 교민 사회도 트럼프 지지세가 제법 늘어나는 등 예전과는 사뭇 달라진 분위기다. 교민들이 미국 사회에서 자리를 잡으면서 불법 이민자 증가에 따른 치안 등 사회불안 문제를 중시하는 여론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민주당 지지가 공고한 캘리포니아, 그 중에서도 가장 진보적인 도시로 꼽히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유난히 민주당을 상징하는 파란 의상을 입은 유권자들이 많았다. 트럼프의 선거 구호인 ‘미국을 다시 위대하게(Make America Great Again)’를 풍자해 ‘미국을 다시 생각하게(Make America Think Again)’ 모자를 쓰고 투표소를 찾은 노인도 만날 수 있었다. 70대 노리스와 슈드 씨는 “강한 두려움에 투표소로 나왔다”면서 “이렇게 세계가 위태로운 때는 트럼프 같은 인물이 대통령이 되기 좋은 시기가 아니다”라고 잘라 말했다.
사전투표소에서 만난 30대 백인 여성은 여성으로서 주체적인 선택을 했다고 강조했다. 그는 “매우 비싸고 위험한 도시에 살면서 여성으로서 내 정체성을 지키고 대변해줄 후보에게 투표했다”며 해리스에게 투표했음을 시사했다.
진보색이 강한 도시답게 시민 상당수는 민주당을 지지했지만 살인적인 주거비와 불안한 치안에 공화당으로 마음이 기운 유권자들도 심심찮게 눈에 띄었다. 30대 흑인 여성 앙투아네트 씨는 “주거비도 식비도 기름 값도 너무나 올랐는데 치안은 거꾸로 엉망”이라며 “내 삶을 개선해줄 수 있는 후보에게 투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해리스 지지 푯말이 가득한 주택가 일부에서는 드물지만 트럼프·JD 밴스 지지 푯말을 볼 수 있었다.
2016년 대선 당시 트럼프의 승리를 정확히 예측했던 김동석 미주한인유권자연대 대표는 “이번 선거는 설문 조사 결과부터 해서 바닥 민심까지 예측이 어려울 정도로 유례없는 박빙의 승부”라며 “결과가 윤곽이 나올 때까지 일주일 이상 걸릴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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