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산업 주무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가 ‘전자여행허가제(K-ETA)’에 대해 작심 비판하고 나섰다. K-ETA가 불법 체류자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서 오히려 외래 관광객을 쫓아내고 대한민국 국가이미지만 나쁘게 한다는 것이다. 올해 연간 2000만 외래 관광객 유치 목표를 내건 문체부로서는 치명적인 타격인 셈이다.
문체부는 지난 6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인바운드 국제경쟁력 강화 포럼’을 열고 K-ETA의 장단점을 집중 논의하고 개선책을 모색했다. K-ETA는 법무부가 지난 2021년 9월 새로 도입한 출입국 관련 제도로, 무사증(무비자) 입국 외국인들의 불법 체류를 막기 위해서라는 것이 주된 이유다. 무사증 입국 대상 국가 가운데 국내 불법 체류자가 많은 일부 국가 국민에 대해 별도의 K-ETA 심사를 하면서 입국 불허 여부를 판정하는 것이다. 문제는 특정 국가들에서 K-ETA로 입국불허 통보를 받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고 그 이유조차 불명확하면서 불거지고 있다.
문체부의 의뢰를 받은 대외경제정책연구원 구경현 무역투자정책팀장은 이날 K-ETA 효과에 대한 첫 공식 관광산업 연구 결과를 발표했다. 결론은 외래 관광객 감소 이유는 많지만 불법 체류자 방지 효과는 거의 없다는 것이다.
구 팀장에 따르면 코로나19 이후 K-ETA 실시 국가이자 동남아시아 국가 중 가장 큰 방한 시장인 태국과 말레이시아의 방한 관광객이 현저히 줄었다. 2023년 4월부터 2024년 5월까지 태국과 말레이시아 등 2개국의 방한객은 월평균 1만 6985명, 연 단위로 환산하면 1년간 총 20만 3820명이 감소했으며 이에 따라 연간 관광 수입 최소 1억 7000만 달러(약 1924억 원)이 감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2023년 한국 영화 수출액(6000만 달러)의 약 3배 규모이자 웹툰 수출액(1억 8000만 달러)과 비슷한 수치다. 국내 산업연관 관계를 고려했을 때 3745억 원의 국내 생산 감소, 1388억 원의 부가가치 감소, 그리고 2534명의 고용 감소로 이어진 것으로 추산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초 법무부 기대와 달리 K-ETA 도입으로 해당 국가의 불법 체류자가 감소했다는 의미있는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다. 처음부터 불법 체류 의사가 있는 사람은 브로커를 통해 K-ETA를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히려 선량한 외래 관광객만 힘들게 한다는 것이다.
구경현 팀장은 “K-ETA로 외국인 관광객들은 이유 없이 입국 불허 당할 수 있기 때문에 불확실성을 갖게 된다”며 “현지 상품 공급자(여행사)는 한국여행 상품 기획을 피하게 되는 악순환을 가져오게 된다”고 했다. 이어 “해당 국가에서 K-ETA로 한국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가 확산하고 있다”며 “대신 인접국인 대만, 일본은 입국 문턱을 낮추면서 관광객을 끌어모으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관광업계에서도 K-ETA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공유했다. 토종 온라인여행사(OTA) 크리에이트립의 임혜민 대표는 “방한 시장을 성장시키기 위해서 정부정책 일부를 재검토해야 한다”며 “한국관광이 최근 동남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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