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사회민주당·SPD)가 경제정책을 두고 장기간 갈등을 빚어온 자유민주당(FDP) 소속 재무장관을 해임하면서 ‘신호등 연정’이 사실상 붕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숄츠 총리는 불신임 투표를 거쳐서라도 FDP와 결별한 뒤 소수 정부 형태로 국정운영을 이어가겠다는 입장이다.
숄츠 총리는 6일(현지 시간) 기자회견을 열고 크리스티안 린드너 재무장관의 해임을 프랑크발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에게 요청했다며 내년 1월 15일 연방의회에 자신에 대한 불신임 투표를 부치겠다고 밝혔다. 숄츠 총리가 속한 SPD와 FDP·녹색당은 3년간 연립정부를 유지해왔지만 예산과 경제정책에 대한 입장 차로 충돌하면서 한동안 불안정한 상태를 지속하며 연정 붕괴 가능성이 제기됐다.
숄츠 총리는 이날 린드너 장관과 관련해 국가에 대한 해악을 막기 위해 해임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에 합류하는 사람은 누구나 책임감 있고 신뢰할 수 있게 행동해야 한다”면서 “상황이 어려워졌을 때 자신의 지지자와 당의 생존에만 집중했다”며 린드너에 대한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숄츠 총리는 이어 내년도 예산안과 관련한 타협안을 제시했으나 린드너 장관이 거부했다며 사회복지 예산 삭감과 고소득층 감세 등의 주장은 신호등 연정의 정책 기조와 근본적으로 어긋난다고 덧붙였다.
양측의 갈등은 지난해 독일 헌법재판소가 코로나19 팬데믹 시절의 비상 자금을 정부 예산으로 쓸 수 없다고 판결을 내리면서 촉발됐다. 독일 정부 재정에 90억 유로(약 13조 4848억 원)가량의 구멍이 생겼고 예산 부족과 경제정책 등을 놓고 양측의 의견이 엇갈리며 갈등의 골이 깊어졌다. 양측은 이달 말까지 마무리해야 하는 2025년도 예산안(4810억 유로) 편성을 놓고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있다. 독일 매체들은 볼커 비싱 교통장관 등 FDP 소속 다른 각료들도 사임할 것이라며 FDP의 연정 탈퇴를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의회가 숄츠 총리를 불신임할 경우 슈타인마이어 대통령이 의회를 조기 해산하고 내년 9월로 예정된 총선을 앞당길 수 있다. 의회가 숄츠 총리를 신임할 경우 SPD와 녹색당이 소수 정부를 유지하거나 야당의 협조를 받을 가능성도 있다. 전문가들은 조기 총선을 치르더라도 집권 여당이 패배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전망했다. 독일 베렌버그은행의 홀거 슈미딩 수석이코노미스트는 “FDP는 독일 연방하원에서 의석을 확보하기 위해 넘어야 하는 문턱인 5%보다 낮은 득표율을 기록할 것”이라며 “SPD와 녹색당도 연방선거에서 패배를 맛볼 것이며 야당인 기독교민주당(CDU)이 가장 많은 표를 확보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전했다.
다만 FDP가 연정을 탈퇴하더라도 숄츠 총리가 불신임 투표를 통과할 경우 내년으로 예정된 총선일까지 SPD와 녹색당의 소수 정부가 지속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독일 헌법에 따라 총리가 의회 불신임 투표를 통과하지 못할 경우에만 대통령이 총선을 소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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