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이 전장에서 총알받이로 전락할 위험에도 불구하고 정권을 향한 세뇌된 충성심과 굶주림에서 벗어나고 싶은 열망, 바깥 세계에 대한 동경 등으로 기꺼이 파병에 자원할 가능성이 높다는 관측이 나왔다. 북한 정권이 이런 북한군의 심리를 이용해 러시아에 더 많은 병력을 보낼 수 있으리라는 우려도 제기된다.
10일(현지 시간) 월스트리트저널(WSJ)은 군인 출신 탈북자와 군사 전문가 등을 인터뷰해 러시아에 파병된 북한 군인들의 충성심과 결의는 단순한 용병 이상의 의미를 지닐 수 있다고 분석했다.
군인 출신으로 2019년 탈북한 유성현씨는 WSJ과 인터뷰에서 “만약 자신이 복무 중에 러시아 파병 명령을 받았다면 오히려 감사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과거 자신 역시 이번 러시아 파병 군인들과 마찬가지로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건설 현장 등에서 가혹한 노동에 시달렸다고 했다. 그런 상황에서 러시아 파병 명령을 받는다면 “적어도 식사는 이보다 낫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라고 짚었다. 유씨는 또 평생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정권에 대한 충성심을 세뇌받은 이들이라면 러시아 파병은 정권에 충성심을 내보일 ‘일생일대의 기회’로 여겨졌을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전직 미군 특수부대 장교 데이비드 맥스웰 역시 이번에 러시아 파병 특수부대로 알려진 11군단, 이른바 ‘폭풍군단’ 군인들은 전투력 면에서는 미국·유럽의 특수부대에 미치지 못하겠지만 정권에 대한 충성심과 위험을 감수하려는 의지만큼은 더욱 강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파병 북한군들이 “전쟁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하고 희생될 수 있다”면서도 “그들은 러시아로 가라는 지도자 명령에 감히 의심을 품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998년 탈북한 전직 북한 장교 심주일(74)씨 역시 “과거 베트남전에 참전했던 군인과 그 가족들이 엄청난 신분 상승을 누렸던 것을 목격한 북한 군인들 입장에서 이번 러시아 파병도 기회로 여겨질 수 있다”며 “베트남전에서 살아 돌아온 공군 조종사들은 모두 영웅 대접을 받고 고위 장교로 진급했으며 전사한 군인들의 아내도 노동당 내 고위직에 오르며 신분 상승을 경험했다”고 설명했다.
이런 상황에서 북한 정권이 마음만 먹으면 추가 파병은 손쉬운 일이라는 우려도 나온다. WSJ은 “북한의 이번 1차 파병의 걱정스러운 지점은 북한이 군대를 더 보낼 수 있다는 점”이라며 “북한은 세계 최대 규모인 약 120만 명에 달하는 상비군을 보유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한편 한국 정부는 러시아에 도착한 초기 북한 병력이 아직 본격적인 전투에는 참여하지 않은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 당국은 북한 군인들이 수일 내에 전투에 참여할 것으로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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