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저한 ‘거래적 동맹관’을 표방하는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세계 각국이 선제적으로 미국산 무기 구매를 대거 늘리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인이 수차례 동맹들의 방위비 분담 의무를 대폭 확대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만큼 차기 미 행정부의 타깃이 되는 것을 피하기 위한 행보로 풀이된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10일(현지 시간) 대만 정부가 자국의 방어력 강화 의지를 보여주기 위해 대규모 미국 무기 패키지 구매를 고려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대만은 록히드마틴의 이지스 구축함을 비롯해 노스롭그루먼의 공중조기경보통제기 E-2D 어드밴스트 호크아이, 대량의 패트리엇 미사일 등의 구입을 요청할 계획이다. 구입 요청 목록에 중국이 가장 경계하는 F-35 스텔스 전투기가 포함될 경우 패키지 규모가 150억 달러(약 20조 9220억 원) 이상이 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루퍼드 해먼드챔버스 미국·대만비즈니스협의회 회장은 “(대만의 무기 패키지 구매는) 차기 미국 행정부와 올바른 출발을 시도하기 위한 계약금처럼 보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필리핀 정부 역시 방위 역량 강화를 이유로 미국산 무기 구매를 늘릴 계획임을 밝혔다. 길버트 테오도르 필리핀 국방부 장관은 FT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4월 두 차례의 합동 군사훈련을 위해 들여온 미군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 시스템 ‘중거리 화력 체계(MRC·타이폰)’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말했다. 타이폰은 필리핀이 인도에서 조달한 브라모스 초음속 함대 미사일(사거리 200~300㎞)에도 적합하다. 중국은 앞서 필리핀이 합동 군사훈련이 끝난 후로도 타이폰을 남겨두자 “도발적이고 파괴적인 행위”라고 비난한 바 있다.
일본도 트럼프 2기 출범 시 방위비 분담금 증액 압박을 받을 주요 동맹 중 한 곳이다. 아사히신문에 따르면 일본 방위성은 미국산 무기 및 용역을 구매하는 대외군사판매(FMS)를 통해서만 지난해 57억 달러(약 7조 9460억 원)를 지출했다. 트럼프 행정부가 방위비 증액을 요구할 경우 일본 측은 2027년까지 방위비를 국내총생산(GDP)의 2%까지 인상하기로 한 방침을 강조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와 관련해 일본 정부의 한 관계자는 “FMS는 미국 측이 ‘부르는 게 값’인 불리한 시스템”이라며 “차기 미국 정부가 추가 부담을 요구해도 (우리 주장을) 강하게 펼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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