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왕조 기록문화의 꽃이라고 할 수 있는 ‘의궤(儀軌)는 국가나 왕실이 주요 의식과 행사를 치른 뒤 모든 과정을 기록한 ‘종합 보고서’다. 자손만대 보전하기 위해 서해의 섬 강화도에 외규장각을 마련하고 보관했지만 1866년 병인양요때 프랑스군에 약탈돼 반출된다. 100여 년이 지난 뒤 프랑스에서 그 존재를 확인하고, 고(故) 박병선 박사를 비롯한 각계각층의 노력 끝에 2011년 외규장각을 떠난 지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그동안 창고에 보관돼 드문드문 특별전에서만 모습을 보였던 ‘외규장각 의궤’를 일반인도 자유롭게 관람할 수 있게 상설전시하는 공간이 처음으로 국립중앙박물관에 마련됐다. 국립중앙박물관은 서울 용산구 박물관 내 상설전시실 2층 서화관 안에 외규장각 의궤를 전시하는 전용 공간인 ‘외규장각 의궤실: 왕의 서고, 어진 세상을 꿈꾸다’를 새로 꾸미고 14일 공개했다.
이날 문을 연 외규장각 의궤실은 195㎡(약 59평) 규모로, 원래 외규장각과 비슷하게 기둥과 문살을 넣어 ‘왕의 서고’처럼 꾸몄다. 건축가이자 교육자로 활동 중인 김현대 이화여대 교수가 기본 설계를 맡았다.
첫 전시물로는 총 8책을 만날 수 있다. 병자호란 이후 종묘의 신주를 새로 만들고 고친 일을 기록한 유일본 의궤 ‘종묘수리도감의궤’와 제작 당시의 책 표지가 그대로 남아 있는 어람용 의궤 ‘장렬왕후존숭도감의궤’가 전시됐다. 또 조선 왕실의 결혼과 장례에 관한 의궤로, 조선 19대 왕 숙종이 치른 세 번의 가례를 기록한 의궤 3책과 숙종의 승하부터 3년상을 치르는 절차를 기록한 의궤 3책이 공개됐다. 박물관 측은 1년에 4차례 전시 의궤를 교체할 계획이다.
한자로 기록돼 있어 알기 어렵고 관람객들이 가까이서 볼 수 없는 점을 고려해 디지털 방식을 사용해 직접 책을 넘겨볼 수 있는 ‘디지털 책’을 배치해 이해를 돕는다. 외규장각 의궤는 모두 297책이다.
이번 외규장각 의궤실은 국립중앙박물관을 후원하는 모임인 국립중앙박물관회와 국립중앙박물관회 젊은 친구들(YFM)의 도움을 받아 완성했다. YFM은 50세 이하 경영인들이 2008년 결성한 모임으로, 전시실 조성 비용 전반을 지원했다. YFM 위원장을 맡고 있는 송병준 컴투스 의장도 이날 참석해 “2021년 YFM이 후원한 ‘사유의 방’과 함께 국립중앙박물관을 대표할 수 있는 전시공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김재홍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소중한 문화유산인 외규장각 의궤의 참모습을 알 수 있도록 알차게 꾸민 공간”이라며 “청소년과 어린이들이 꼭 방문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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