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국회 연금 개혁 토론회에서 한 청년단체 연합회의 여론조사가 주목을 끌었다. 국민연금 폐지에 찬성하는 비율이 2030세대에서는 40%대 후반(20대 46%, 30대 48%)으로 전체 세대 평균 31.3%에 비해 압도적으로 높다는 조사 결과였다. 설문에는 ‘국민연금이 폰지사기라는 비판에 동의하는가’라는 튀는 질문도 있었다. 이 질문에 ‘그렇다’고 답한 비율은 20대가 63.2%로 60대(33.5%)에 비해 두 배가량 높았다. MZ세대는 왜 국민연금에 대해 불신하는지 듣기 위해 연합회를 이끄는 손영광 연금개혁청년행동 공동 대표를 15일 전화로 인터뷰했다. 1991년생인 손 대표는 서울대에서 전기공학 박사 학위를 받고 국책연구기관 연구원을 거쳐 지난해부터 울산대 전기공학부 교수를 맡고 있다.
“국민연금이 후세대가 현세대를 부양하는 ‘세대 연대’ 개념이 있다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하지만 저희 세대로서는 무책임한 표현이라고 생각해요. MZ세대와 그 아래 세대, 심지어 태어나지 않은 세대에게 천문학적인 부채를 떠넘기고 세대 연대 운운하는 것은 난센스 아닌가요.”
손 대표는 국회 연금 개혁 공론화 위원회의 논의 과정을 지켜보면서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고 했다. “주변 친구들과 자료를 찾아보고 공부하기 시작했는데 연금 제도가 말도 안 되게 엉망이라는 것을 알았죠. 다음 세대에게 1800조 원에 이르는 천문학적 부채(미적립부채)를 어떻게 떠넘길 수 있나요. 우리 세대는 완전 ‘폭망’입니다. 공적 연금과 세금을 합치면 월급 절반이 날아가게 됩니다. 지난달 국회 토론회 참석을 계기로 20여 개 청년단체의 연대를 결성했습니다.”
국민연금은 폰지사기 …저출산 고령화에 반드시 폭탄 터져
손 대표는 “MZ세대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전달하자는 의미에서 ‘청년행동’이라고 이름 지었다”며 “조만간 2~3개 대학 총학생회가 합류할 예정”이라고 소개했다. 청년행동은 이달 말 국회에서 제대로 된 개혁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가질 예정이다.
그는 미적립부채 문제와 관련해 “현세대가 초래한 문제는 현세대가 해결해야 한다”며 “이 지경으로 만든 기성세대가 가능한 한 최대한 부담을 져야 미래세대도 고통을 분담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연금 개혁 논의는 미적립부채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적립부채는 미래에 보험료로 지급해야 함에도 적립하지 못한 부족액으로 기금 고갈 이후에는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대로 가면 연금 폰지사기라는 폭탄이 터질 게 너무나 명백합니다. 적게 내고 많이 받아도 미래세대의 인구가 두 배 증가하면 그냥 넘어가겠지만 저출생이 고착화한 지 오래 됐잖아요. 젊은이들이 차라리 국민연금 안 내고 안 받겠다는 말이 그냥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MZ세대, 안 내고 안 받겠다…세대간 빚 돌려막기 ‘그만’
9월 정부가 발표한 연금 개혁안에 대한 평가를 묻자 “여야 잠정 합의안을 포함해 지금껏 제시된 여러 방안보다는 낫다”면서 “자동재정안정장치는 후세대의 부담을 줄여준다는 측면에서 전향적이지만 이 정도로는 수긍할 만한 수준이 못 된다”고 지적했다. “저희 세대는 기금 고갈의 불안도 있지만 그 보다는 평생 내는 돈만큼도 못 받을 수 있는 구조를 더 우려합니다. ‘적게 내고 많이 받는’ 구조는 달라진 게 없습니다. 미래세대에 빚 폭탄을 떠넘기는 부조리를 외면한 채 세대 간 돌려막기를 계속하겠다는 것은 무책임한 처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런 문제 제기를 세대 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은 옳지 않다고 봅니다.”
연금 제도 폐지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기성세대가 엉터리 제도를 만들어 놓고 그냥 따라 오라고 하면서 미래세대가 수긍하고 가만히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면 오산”이라며 “젊은 세대의 목을 죄여오면 연금 보이콧이 벌어지지 않으리라 장담 못한다”고 강조했다.
“과거 1970·1980년대 젊은 세대는 민주화라는 모티브로 운동권을 형성했습니다. 어쩌면 2020년대에는 새로운 방향의 운동권이 나타날 수 있다고 봅니다. 기폭제는 연금입니다. 이 지경이 되도록 방치한 정치권과 정책 당국자, 전문가 집단은 반성부터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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