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여대 내 교내 성폭력 의혹을 받는 교수가 자신을 비판한 학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등 갈등이 고조되는 가운데, 서울여대 학생들이 피소된 학생의 불송치를 촉구하는 집회를 열고 미온한 학교 측의 대응을 비판했다.
19일 오전 10시 40분께 서울여대 페미니즘 동아리 ‘무소의 뿔’은 서울 노원경찰서 앞에서 ‘성범죄 가해자에게 훼손될 명예는 없다. 명예훼손 무죄 결정을 위한 연대’ 집회를 열고 “대자보 부착은 위법성이 조각되며 학생들의 행위는 명예훼손죄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밝혔다.
이날 집회에 참여한 500여 명(주최 측 추산)의 학생들은 “대자보를 부착한 이유는 성범죄 은폐를 막고 학생 공동체의 알 권리를 충족시키는 데 목적이 있었다”며 해당 사건을 두고 수사 중인 경찰의 명예훼손 불송치 결정을 촉구했다. 현장에는 경찰 100여 명이 출동해 안전 사고에 대응했다.
이번 집회는 지난해 4월 교내 성폭력 가해자로 지목된 독어독문학과 A 교수가 자신을 향해 대자보를 붙인 학생들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하면서 시작됐다.
지난해 서울여대 측은 A 교수가 학생을 상대로 성추행했다는 신고가 인권센터에 접수되자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올해 9월 해당 사건이 교내 커뮤니티를 통해 뒤늦게 전파되자 학생들이 “그 교수 보아라” “무슨 낯짝으로 교단에 계십니까” 등의 대자보를 붙였는데, 지난달 22일 A 교수가 이들을 고소한 것이다.
마스크와 모자를 쓰고 모인 학생들은 “교수가 학생에게 성범죄 저지르고, 대자보 부착하던 학생들을 고소했다” “성추행은 겨우 감봉 대자보는 경찰 고소” 등의 구호를 외치며 A 교수와 학교 측을 강하게 비판했다. 학생들은 12일부터 ‘래커 시위’를 진행하고 있다.
서울여대 총학생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집회에 참석해 “성폭력 공론화는 허위사실이 아닌 진실을 기반으로 한 목소리이자 용기 있는 행동이었다”며 “(공론화가) 명예훼손이라는 억울한 굴레에 갇히지 않기를, 사회도 여성들의 진정성 있는 외침에 귀 기울여주는 기회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남녀공학 전환’에 대해 학교 측과 갈등 중인 동덕여대 등 서울 내 여대 학생들도 모여 연대의 뜻을 밝혔다.
일부 서울여대 교수들은 학생들의 움직임에 동참하며 학교 측의 대응을 요구하고 있다. 신현숙 독어독문학과 교수는 연단에 올라 “어른들과 교수들의 잘못으로 여러분들이 이렇게 힘들게 싸우는 걸 보는 게 미안하고 부끄럽다”며 눈물을 흘렸다.
서울여대 제18대 교수평의회는 전날 입장문을 통해 “승현우 총장은 학생들의 요구를 진지하게 경청하고 대책 마련과 재발 방지를 위한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라”라면서 “A 교수는 학생들에 대한 고소를 취하해달라. 학생들과의 문제를 캠퍼스 밖에서, 그것도 법을 통해 해결하겠다는 생각은 사태를 악화시킬 뿐”이라고 밝혔다.
학생들에게는 “시위의 방법들이 학교의 오랜 불통에 대한 반응이라는 점을 잘 알고 있다”면서도 “길을 만드는 과정은 정당한 절차와 합리적이고 타당한 방법과 함께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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