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바 시게루 일본 총리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로 첫 정상 외교를 마친 가운데 기존 정부의 정책을 계승하는 자세를 취하며 초반 ‘안전 운전’에 주력했으나 ‘외교 의전’에서 미숙함이 드러났다는 일본 언론의 평가가 나왔다.
21일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이시바 총리는 페루에서 개최된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첫 회담을 갖고 기시다 후미오 전 내각이 추진해온 미일동맹 강화와 한미일 연계 방침을 지속하기로 합의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첫 회담에서도 지난해 11월 기시다 전 총리가 확인했던 ‘전략적 호혜관계’ 구축을 재차 표명했다.
장기 정권 하에 각국을 방문했던 아베 신조 전 총리나 4년 이상 외무상을 지낸 기시다 전 총리와 달리, 이시바 총리는 외교 경험이 거의 전무했다. 이에 이번 해외 순방 기간 중에는 사전에 준비한 답변 내용을 충실히 지키고, 아시아판 나토 구상 등 자신의 소신 발언은 자제했다.
그러나 국제 무대 경험 부족이 곳곳에서 드러났다. APEC 정상회의에서는 인사차 방문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와 안와르 이브라힘 말레이시아 총리 등의 악수를 의자에 앉은 채로 받는 모습이 포착돼 논란이 됐다. 외무성 관계자는 “신임 총리가 직접 인사를 돌아야 할 상황에서 실무진의 지원이 부족했다”고 해명했다. 시진핑 주석과의 정상회담에서는 양손으로 악수를 해 또 한번 구설에 올랐다. 통상 외교 무대에서 정상들은 대등한 관계를 나타내기 위해 오른손으로만 악수한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선거 유세 시 유권자와 악수하던 습관이 나온 것 같다”고 밝혔다. 이 외에도 페루 체류 중 총리의 희망으로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의 묘소 참배가 갑자기 일정에 추가돼 각국 정상들과의 기념촬영에 늦는 일도 발생했다.
한편, 이번 정상 외교를 계기로 도널드 트럼프 차기 미국 행정부와의 관계 구축은 이시바 내각의 ‘시급한 과제’로 부상했다. 당초 이번 남미 순방 후 미국 플로리다주에 있는 트럼프 당선인의 자택을 찾아 조기 회동하는 방안을 추진했으나 이 계획은 끝내 불발됐다. 2016년 트럼프 1기 때 대선 직후 조기 회동을 성사시켜 밀월 관계의 발판을 마련했던 아베 전 총리의 사례를 재현하려 했지만 실패한 것이다. 외무성 간부는 “8년 전 ‘트럼프 타워’에 홀로 있던 트럼프와 지금의 그는 다르다”며 “측근을 중심으로, 팀으로 움직이고 있어 직접 접근이 더 어려워졌다”고 말해 정상 간 관계를 쌓는 데 이전보다 더 시간이 걸릴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일본 정부는 양국 관계를 보완할 다층적인 ‘트럼프 인맥 구축’에 더욱 속도를 내고 있다. 니혼게이자이신문에 따르면 일본 외무성은 국무장관 유력 후보인 마코 루비오 상원의원에 큰 기대를 걸고 있다. 루비오 지명자는 아시아 통이자 대중 강경파로 알려진 인물로 지난 2014년 미 상원 외교위원회 동아시아태평양 담당으로 일본을 방문해 아베 당시 총리를 예방한 바 있으며 아베 정권과 긴밀한 관계를 구축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차기 국가안보보좌관으로 지명된 마이클 월츠 하원의원도 일본과 인연이 있다. 그는 미일재단의 ‘미일 리더십 프로그램’ 펠로우 출신이다. 이 단체는 양국의 차세대 인재 교류 기관으로 고노 다로 전 외무상과 에리 알피야 외무정무관 등 일본 정계 인사들과 연결고리가 있다. 이와 별개로 일본의 대표 방위통인 나가시마 아키히사 총리 안보담당 보좌관이 20~24일 일정으로 미국을 방문해 직접 트럼프 캠프의 안보팀과 접촉할 예정이다. 이시바 총리는 내외신 기자회견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어떻게 대치할 계획이냐’는 질문에 “대치라는 생각은 하지 않겠다”며 “미일 협력이 미국의 국익이 된다는 점을 잘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도록 노력하겠다”고 의욕을 보였다. 이에 대해 요미우리는 “아베 총리 때처럼 좋은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라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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