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세를 진정 걱정한다면/ 오늘서부터 내세를, /아니 영원을/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구상 시인의 ‘오늘서부터 영원을’ 중에서)
프랑스 문화부가 선정한 세계 200대 문인으로 꼽힌 시인 구상의 삶이 내달 연극 무대에 올려진다.
22일 영등포구는 “영등포연극협회와 극단 목련이 함께 제작한 연극 ‘시인 구상의 노래’를 2004년 타계한 고(故) 구상 시인의 20주기를 기념해 기획했다”고 밝혔다. 공연은 내달 6~7일 양일간 서울 영등포구 영등포아트홀에서 진행된다.
영등포구의 지역 문화예술 활동 육성지원사업 일환으로 진행되는 연극 ‘시인 구상의 노래’는 격동의 시대사와 얽힌 구상의 삶을 비롯해 종교와 예술, 현실 사이에서 고민한 시인이 풀어낸 구도(求道)의 길이 무대에서 펼쳐진다.
‘시인 구상의 노래’의 박정의 연출은 “1919년 태어나 식민과 해방에 이어 분단과 전쟁, 혼돈의 자유당 시절을 거치며 그가 진실로 찾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을지 삶의 궤적을 돌아보는 기회”라며 “그가 남긴 ‘오늘서부터 영원을’의 의미를 짐작해보고자 한다”고 기획 의도를 소개했다.
연극의 큰 줄기는 시인 구상의 삶과 고뇌다. 1919년 서울 이화동에 태어난 구상은 원산의 보통학교 입학 첫날부터 양복을 입은 자신이 다른 학생들과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된다. 방황하는 청소년기를 보내고 신학교를 중퇴했지만 일반 학교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밀항해 동경으로 간다.
당시 공장을 전전하며 니혼대 종교과에 입학한 그는 화가 이중섭을 만나 우정을 쌓는다. 천신만고 끝에 해방을 맞이했지만 해방은 그가 꿈꾸던 해방이 아니었다. 원산에서는 그가 쓴 시를 반동이 쓴 시로 몰아 인민재판을 받게 되자 결국 월남을 택한다. 이어 발발한 6·25 전쟁에서는 종군기자로 활약했다. 자유당 시절 혼란기에는 감옥에 투옥되는 신세가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현실 정치에서 물러서 종교와 시의 세계로 안착한다.
이번 연극을 꾸려낸 한국연극협회 영등포구지부는 2022년 3월 창단된 신생 극단이다. 지난해에는 박경식 연출의 ‘브라이튼 해변의 추억’을 무대에 올렸고, 올해는 강영걸 연출의 ‘작은 할머니’를 성공적으로 공연하면서 실력을 키우고 있는 작지만 강한 극단으로 평가 받고 있다. 올해 대한민국연극제에서는 연극 ‘소년간첩’으로 서울예선전에서 대상을 차지해 서울 대표로 본선에 참가해 은상을 수상하며 전국구에서 실력을 인정받기도 했다.
한편 영등포구는 시인 구상의 삶을 기념하는 행사들을 지속적으로 마련할 계획이다. 앞서 지난 5월 윤중로를 거닐며 사색한 끝에 한강에 관한 주옥같은 시들을 써낸 구상 선생을 기념해 여의동로 221~375번지 구간의 1553미터(m)를 ‘구상시인길’로 지정하고 여의나루역 앞에 표지석을 세우기도 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