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밤의 깜짝 계엄은 약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시민들의 분노는 갈수록 커져가고 있다. 4일 오전부터 서울 광화문, 국회 등 도심 곳곳에는 시민사회와 정치권은 물론 일반 시민들까지 삼삼오오 모여 윤석열 대통령을 규탄하는 목소리를 높였다.
4일 오전 8시 40분께 찾은 여의도 국회의사당은 새벽의 격앙된 분위기는 다소 가라앉았지만 어수선함은 여전히 가시지 않았다. 정문 앞은 “윤석열을 체포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는 촛불행동·한국대학생진보연합(대진연)·태극기 부대 등 각종 시민 단체 회원들과 인도를 둘러싸고 길게 늘어선 경찰들로 혼란한 모습이었다. 정치 유튜버들도 곳곳에 죽치고 앉아 있는 모습이 포착됐다. 한 유튜버는 마이크를 들고 “윤석열을 체포하라” 구호를 반복적으로 외치기도 했다.
경찰이 통행을 일부 통제하며 출근길 발걸음을 재촉하는 시민들과 갈등을 빚기도 했다. 한 국회 직원은 ‘대신 지하도를 이용하라’고 안내하는 경찰에게 “통행권을 침해하면 어떡하냐, 왜 길을 건너지 못하게 하냐”며 실랑이를 벌였다. 경찰은 의사당 앞 횡단보도 2개 중 1개의 보행을 통제했다가 8시 48분께가 돼서야 바리케이드를 해제하고 시민들에게 길을 내줬다.
광화문 광장도 이른 아침부터 긴급 단체행동에 나선 시민단체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오전 8시 39분께 기자가 도착한 광장 한가운데선 이미 민중민주당 당원들이 일렬로 늘어서 ‘전쟁 계엄 반대’ ‘파쇼 독재 윤석열 타도’라는 문구가 적혀 있는 피켓을 들고 농성을 진행하고 있었다.
오전 9시에는 민주노총이 예고했던 대로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대통령이 퇴진할 때까지 총파업을 열겠다고 선언했다. 양경수 민주노총 위원장은 “윤석열의 비상계엄시도는 절차와 내용적 정당성을 결여한 반민주, 반헌법적 폭거”라고 규정하면서 “3일 밤 이후 윤석열은 민주공화국의 대통령자격을 상실했다. 우리 국민들은 이제 단 한시도 윤석열을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박석운 한국진보연대 상임공동대표는 “오늘 저녁 6시부터 수도권은 이 광화문 광장을 중심으로 총 집중해주실 것을 호소한다. 광역·기초지역 모두 각자 저녁 6시 총집중 국민적 저항행동을 펼쳐내자”며 8년 전 전국을 휩쓸었던 촛불시위의 재현을 예고하기도 했다.
이어 진행된 계엄령 규탄 시위에선 조합원들과 시민들 200명이 한 데 모여 0도 안팎의 차가운 날씨에도 굴하지 않고 깃발을 나부끼며 단결했다. 발걸음을 재촉하던 행인들도 잠시 멈춰서 상황을 지켜보는가 하면 한 손에 커피를 든 채 뜨거운 입김을 내뿜으며 의견을 나누기도 했다.
일부 시민들은 서울지하철·철도노조 등이 비상계엄 선포에 대응해 파업한다는 소식에 갈수록 정국이 어지러워지는 것 같다며 우려를 표하기도 했다.
광화문 광장에서 만난 박 모(60) 씨는 “파업을 포함해 정국이 앞으로 혼란스러워질까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60대 이 모 씨는 “(지하철 파업 소식에) 이동 시 염려가 된다”고 덧붙였다.
다만 대통령의 돌발 행동에 대응할 수 있는 몇 안되는 수단이라며 파업을 옹호하는 목소리도 상당했다. 광화문 인근 호텔에 가족들과 놀러왔다는 김 모(53) 씨는 “파업은 할 건 하고 가야한다고 본다”며 “대통령에 대응하는 방법 중 하나”라고 강조했다. 50대 중반 현 모 씨는 “파업이랑 계엄령이 무슨 상관인지 모르겠지만 어지간한 국민들은 불편을 감수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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