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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요일 아침에] ‘트럼프 리스크’가 문제가 아니다

美 정권교체 앞 韓 경제 우려 크지만

나라 뒤덮은 정치 리스크 최대변수

불확실성 증폭에 국가 신인도 위태

정치위기 해소 없이 경제 미래 없어





“공직자의 지속적인 인기는 사람들이 무엇에 박수를 보낼지 추측하는 데서 오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할 때 그 공직자의 뛰어난 판단에 의지할 수 있다는 느낌을 전달하는 데서 옵니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이자 정치사상가 월터 리프먼은 1933년 3월 대통령 취임을 앞둔 프랭클린 루스벨트를 향해 뼈 있는 한마디를 날렸다. 1929년 대공황 발생 이래 미국 경제 규모의 30%가 증발하고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은 상황이었다. 선거 전 루스벨트를 “유쾌한 사람이지만 대통령이 될 중요한 자질은 갖고 있지 않으면서 무척 대통령이 되고 싶어한다”고 혹평했던 리프먼은 새 지도자가 최악의 경제 위기에서 나라를 구하기보다는 대중의 인기만 추구할까 봐 무척 불안했던 모양이다.

역사가 입증한 대로 리프먼의 걱정은 기우였다. 루스벨트는 취임 이후 첫 100일 동안 경제 재건을 위한 76개 법안을 일사천리로 통과시키며 뉴딜 정책을 펼쳐 미국을 대공황의 늪에서 빠져나오게 했다. 1941년에는 전통적인 고립주의 노선을 버리고 제2차 세계대전에 참전해 전쟁을 연합국의 승리로 이끌었다. 전 세계의 경제·안보가 가장 불확실했던 시기에 12년 동안 나라를 이끌며 미국을 세계 최고의 강대국으로 만든 그는 오늘날까지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미국 대통령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런 루스벨트와 대비되는 인물이 그의 전임자였던 허버트 후버 전 대통령이다. 이전 행정부의 경제 실책 여파로 하필 취임한 지 수개월 뒤 대공황을 맞은 불운의 지도자였다. 하지만 그를 역대 최악의 미국 대통령 명단에 오르내리게 만든 것은 그 자신의 오판에 기인한 바가 크다. 기업들이 줄도산하고 실업자들이 쏟아지는 와중에도 “불경기는 2개월이면 끝날 것”이라며 근거 없는 낙관론과 자유방임주의 신념에 매달려 사태 수습에 실패했다. 초동 대처 실패와 잇단 실책으로 경제를 거덜낸 그를 가리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내가 되고 싶지 않은 단 한 명의 대통령은 후버”라고 공언했을 정도다.



요즘 글로벌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경제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크다. 내수가 죽을 쑤는데 내년 1월 전방위 관세 장벽과 더 강한 ‘미국우선주의’로 무장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취임하면 수출도 타격을 입을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조지프 나이 하버드대 명예교수의 말대로 “예측할 수 없는 불확실성을 무기 삼는” 미국의 차기 지도자는 이미 중국과 캐나다·멕시코에 대한 고율 관세를 언급하며 향후 4년간의 국제 경제 질서 혼돈을 예고했다. 그 혼돈에서 한국도 자유로울 수는 없다.

하지만 무엇보다 우리 경제를 불안하게 만드는 것은 ‘트럼프 리스크’가 아니다. 가장 큰 위협은 경제를 잡아먹는 국내 정치 리스크다. 거대 야당의 입법·예산 폭주에 반도체 산업 육성부터 세제, 기업 경영, 재정까지 정책 불확실성이 큰 데다 윤석열 대통령과 정부 경제팀은 경기 불안이 점증되는 와중에도 “경제가 기지개를 켜고 있다”며 현실과 괴리된 낙관주의에만 빠져 있었다. 가뜩이나 지난해 연구개발(R&D) 예산 삭감부터 대출 정책, 상법 개정, 추가경정예산 편성 문제에 이르기까지 섣부른 발표와 입장 뒤집기로 정부 정책에 대한 불신감을 키웠다. 이러니 국민들이 ‘정부의 판단에 의지할 수 있다’는 느낌을 받았을 리 만무하다. 결정타는 3일 밤 윤 대통령의 갑작스러운 비상계엄 선포였다. 계엄령은 6시간 만에 해제됐지만 계엄 파동이 탄핵 정국으로 이어지며 정치 불확실성은 더욱 증폭되고 있다. 최악의 국정 혼란을 드러낸 한국 정치의 민낯이 앞으로 우리 경제와 시장에 미칠 악영향은 가늠하기조차 어렵다.

미국의 경제학자 존 케네스 갤브레이스는 1977년의 저서 ‘불확실성의 시대’에서 위대한 지도자들의 공통점에 대해 “국민의 불안과 정면으로 대결하려는 마음가짐”이라고 지적했다. 대공황이라는 거대한 국민적 불안에 맞서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한 루스벨트처럼 말이다. 20세기를 ‘불확실성의 시대’로 규정한 갤브레이스의 눈에 윤 대통령과 우리나라 상황은 어떻게 비칠까. ‘트럼프 리스크’를 탓할 때가 아니다. 판단 착오를 거듭하는 지도자와 정치 실종에서 비롯되는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한국 경제에 미래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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