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출신의 젊은 커플이 최근 신혼여행으로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아주 멀고 꼭 한번 가고 싶은 곳으로 신혼여행을 가고 싶었는데 그곳이 바로 한국”이라고 말했다. 앞서 한국에 출장 온 적이 있는 남편이 그때의 기억이 워낙 좋아서 결혼하면 꼭 부인과 다시 오고 싶었다고 했다.
한국 여행을 ‘버킷 리스트’로 삼은 외국인들이 늘고 있다. K팝이나 K영화·K드라마로 시작한 한류가 식품·뷰티·패션 등으로 번지면서 세계적인 트렌드로 자리 잡은 덕분이다. 특히 K콘텐츠를 접한 다양한 국적의 외국인들이 한국에 호감을 갖고 여행지로 한국을 찾고 있다. 한국문화관광연구원은 K콘텐츠의 인기가 외국인 관광객의 증가로 이어진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기도 했다.
실제로 한국관광공사에 따르면 올해 1~10월 누적 방한객은 1374만 명으로 지난해 동기 대비 54.7% 늘었다. 2019년 같은 기간의 94%를 기록해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회복해가는 모습이다. 9월에는 처음으로 코로나19 전보다 많은 146만 명의 외국인 관광객이 한국을 찾았다. K뷰티 제품과 패션 의류 등을 판매하는 올리브영·무신사·다이소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가 됐다.
이달 26일 공개되는 넷플릭스 오리지널 ‘오징어 게임 시즌2’ 역시 오래전부터 전 세계적인 관심을 받아왔다. 지난 주말 프랑스 파리 샹젤리제 거리에서는 넷플릭스 프랑스가 오징어 게임 시즌2를 홍보하는 이벤트를 열기도 했다. 에펠탑을 배경으로 현지 유명 인플루언서까지 포함한 450여 명이 녹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게임을 하는 진풍경이 펼쳐졌다.
윤석열 대통령의 느닷없는 비상계엄 선포 및 해제 사태는 이 같은 K웨이브 열풍에 찬물을 끼얹었다. 미국·캐나다·호주 등 많은 국가가 한국에 대한 여행 경보를 발령했다. 한국 여행 등급 자체는 대체로 안전하다고 유지했지만 시위가 지속될 수 있으니 군중이 모이는 곳을 피하라고 경고한 국가가 대다수다. 전쟁 중인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조차 한국에 대한 여행 경고를 발령했다.
경기가 둔화되는 가운데 그나마 연말 특수를 기대하던 관광·유통업계는 외국인 관광객 감소와 내수 소비 심리 위축을 걱정하게 됐다. 외국인 관광객 전문 여행사들은 안전과 관련한 문의가 이어지면서 이들의 취소 가능성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호텔들도 자체 회의를 열고 외국인 투숙객들의 예약 현황 및 취소 가능성을 점검하고 나섰다.
전국 주요 도시 광장에서 윤 대통령 퇴진을 촉구하는 ‘촛불집회’가 잇따르는 가운데 차량 운행 차단 등으로 주요 상권 매장의 매출 감소에 대한 우려도 커지고 있다. 외국인 관광객이 감소하면 주요 유통업체들이 외국인을 겨냥해 명동이나 홍대·성수 등에 오픈한 매장들이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올리브영의 경우 올해 1~5월 외국인 매출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12%나 늘었다. 다이소 역시 1분기 전체 매장의 해외 카드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76% 증가했다. 무신사스탠다드 오프라인 매장을 찾은 외국인 매출도 342% 뛰었다.
외국인 관광객을 내쫓고 있는 한국과 달리 중국은 한국·일본·불가리아 등 비자 면제 국가 범위를 잇따라 확대하며 외국인 관광객을 불러들이고 있다. 외교 관례상 비자 면제는 상호주의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중국은 일방적 무비자 대상 국가를 늘리는 파격 행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내수 부진에 따른 경기 침체를 타개하기 위해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사활을 걸고 있는 것이다. 효과도 즉각 나타나고 있다. 중국 관영 영자지 글로벌타임스에 따르면 한국인 무비자 입국이 시작된 지난달 8일부터 이달 2일까지 한국발 중국 관광 예약 건수가 지난해 같은 기간 대비 150% 증가했다.
한국 역시 내년 경제성장률이 1%대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올 정도로 경기 둔화 경고음이 커지고 있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 사태는 이런 상황을 더욱 악화시킬 것으로 우려된다. 중국처럼 외국인 관광객 유치 등 내수 부진을 만회할 방법을 찾아야 하지만 정부와 정치권을 보면 요원해 보인다. 이제 막 글로벌 도약에 나선 K웨이브 역시 국내 정치 상황으로 외국인들의 외면을 받지는 않을지 걱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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