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상대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47대 대통령이 20일(현지 시간) 취임 선서를 하자마자 백악관 성명을 통해 파리 기후변화협정에서 다시 탈퇴하겠다고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기후변화는 사기”라며 화석연료 사용이 지구온난화의 주범이라는 과학자들의 주장을 일축해왔다. 트럼프 1기 때도 탈퇴했다가 조 바이든 정부가 복귀한 것을 2기 들어 재차 궤도 이탈한 것이다.
2015년 195개국이 채택한 파리협정은 산업화 이전(1850~1900년) 대비 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도 아래로 제한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세계기상기구(WMO)에 따르면 지난해 지구 평균온도는 산업화 이전보다 1.55도 상승해 기후 관측 역사상 가장 뜨거웠다. 연간 지구 평균기온이 산업화 이전 시기보다 1.5도 이상 상승한 것은 지난해가 처음이었다고 한다. 우리나라 역시 지난해 연평균 기온이 14.5도로 평년(12.5도) 대비 2도 높았다. 이는 종전 1위를 기록했던 2023년(13.7도)보다 0.8도 높은 역대 최고 기록이다.
기후변화의 대가는 혹독하다. 과학자들은 기온 상승이 지속될 경우 지구 생태계에 회복 불가능한 위험이 초래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지난해 극심한 더위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순례자 1300여 명이 숨졌다. 아시아와 북미에서는 강한 열대성 폭풍이 잇따라 발생했고 유럽과 아프리카에서도 대규모 홍수가 잇따랐다. 올해 들어 7일(현지 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LA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역시 지구온난화로 인한 대기 건조와 가뭄, 돌발적인 강풍 등이 주요 원인이라는 분석이 제기된다.
우리의 식탁 역시 기후변화의 직격탄을 맞고 있다. 기후변화로 농작물 생산이 감소해 먹거리 물가가 오르는 이른바 ‘기후플레이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지난해 봄 서리 피해로 사과와 배 가격이 전년의 두 배로 치솟았고 여름에는 폭염으로 강원도 고랭지 배추 수확량이 급감하면서 배추 한 포기 가격이 1만 원까지 뛰었다. 한국은행은 ‘기후변화가 국내 인플레이션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에서 1년간 월별 평균기온이 장기(1973~2023년) 평균 대비 1도 상승하면 1년 뒤 농산물 가격은 2% 상승할 것이라고 추산하기도 했다.
국내뿐 아니라 커피, 코코아(초콜릿 원료), 올리브 등 해외 농산물 역시 이상기후의 영향으로 가격이 급등하고 있다. 지난해 세계 최대 커피 생산국 브라질이 극심한 가뭄에 시달리며 아라비카 커피 가격이 2011년 이후 최고 수준까지 올랐다.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3분의 2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의 가나와 코트디부아르에서는 엘니뇨 현상으로 코코아 가격이 뛰었다. 이 영향으로 스타벅스를 필두로 한 국내 커피전문점들이 커피 가격을 일제히 올렸고 롯데웰푸드·오리온 등 제과 업체들은 초콜릿이 든 과자 가격을 인상했다.
이런 상황에서 트럼프 2기 정부의 출범으로 기후변화가 가속화할까 우려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파리협정 탈퇴 외에도 에너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화석에너지 공급을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그는 “인플레이션 위기는 막대한 과잉 지출과 에너지 가격 상승으로 인해 발생했다”면서 “우리는 (에너지) 가격을 낮추고 미국산 에너지를 전 세계로 수출할 것”이라고 했다.
미국이 석유와 천연가스 시추를 전면적으로 확대해 글로벌 시장에 공급하면 국제 에너지 가격이 내려가게 된다. 에너지 수입국인 우리나라에도 호재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화석에너지 사용이 늘어나면 지구온난화 속도가 빨라지고 이상기후 현상이 더욱 잦아질 수 있다. 트럼프의 에너지 규제 완화가 국제 식량 가격을 끌어올리며 물가 상승 압력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도 있는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 첫날부터 미국 우선주의와 관련한 각종 실행 계획을 쏟아내며 대대적인 변화를 예고했다. 윤석열 대통령이 구속돼 탄핵 심판을 받고 있는 한국 정부는 과연 미국의 정책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고 대응할 수 있을지 걱정이다. ‘금(金)사과’ ‘금(金)배추’ 등 신토불이 과일과 채소 가격이 금값이 된 지 오래다. 기후변화 관련 식량 안보 차원의 컨트롤타워와 법제 정비가 시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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