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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서부를 점령한 두 명의 흑인 여성 예술가[아트씽]

[뉴요커의 아트레터]

LA에선 '비엔날레 스타' 조각가 시몬 리

샌프란시스코, 초상화가 에이미 쉐랄드

수 십년 축적된 작품들 선보인 회고전

인종 문제 넘어서 보편적 주제 다뤄

흑인 여성 예술가 시몬 리의 얼굴 없는 푸른 색 전신 도자 조각은 흑인 노예제 합법화와 관련있는 나폴레옹의 첫 부인 조세핀의 조각을 모티브로 했다. /사진제공=엄태근




백인 경찰의 무차별 폭력으로 인한 조지 플로이드 사망 사건 이후 미국 내 흑인 인권 운동(Black Lives Matter)이 확산했고, 예술계의 다양성 요구가 더해지면서 그간 주목받지 못했던 흑인 작가에 대한 미술계의 재평가가 이어지는 중이다. 근래 들어 그 목소리가 더 커지는 추세이고 현재 미국의 주요 미술관에서는 흑인 작가에 대한 조명이 활발하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도시인 로스앤젤레스(LA)와 샌프란시스코에서는 현재 흑인 여성 작가 전시들이 한창이다. LA에서는 조각가 시몬 리 (Simone Leigh)의 입체 작품을 ,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초상화로 유명한 에이미 쉐랄드(Amy Sherald)의 평면 작업을 볼 수 있는 대조적인 매체 경험이 흥미롭다.

미국 서부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흑인 조각가 시몬 리의 대규모 회고전이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엄태근


LA카운티미술관(LACMA)에서 열리고 있는 시몬 리의 대규모 회고전은 원래 2019년 동부 보스턴 현대미술관(the Institute of Contemporary Art·ICA)에서 기획이 시작됐다. 하지만 주요 미술관 큐레이터의 인사이동으로 전시가 미뤄지더니 리의 구겐하임 미술관 휴고 보스 수상과 함께 2022년 베니스 비엔날레의 미국관 대표 작가 선정까지 이어지면서 이제야 순회전이 보스턴, 워싱턴DC를 거쳐 LA에 도착했다.

시몬 리는 흑인 여성에 대한 조각 작업을 주로 한다. 그녀의 작업에서는 익명의 검은 추상 인물 조각들을 많이 볼 수 있다. 특정 인종과 젠더, 단순히 흑인과 여성에 국한하기보다 여러 사회, 정치적 아젠다의 역사를 작업에 투영한다. 예를 들어, 푸른 계열의 전신 세라믹 조각 작품 ‘마르티니크(Martinique)’가 대표적이다. 얼굴 없는 전신 조각상은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의 첫 번째 부인이었던 조세핀의 동상을 참고하여 제작됐다. 조세핀은 프랑스 식민지 중 하나인 캐리비안 해의 섬에서 자랐다. 이 지역은 흑인 노예제를 합법화 했던 상징적 장소였고, 이를 기리기 위해 조세핀 동상이 세워졌었다. 훗날 동상은 철거됐고, 빨간 페인트로 뒤덮였다. 이처럼 사회와 역사적 사건의 보편성을 함축한 작업들은 시몬 리를 세계적 스타 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LACMA에서 한창인 시몬 리의 회고전 전경 /사진제공=엄태근


시몬 리의 조각에서는 재료가 중요하다. 특히, 흑인 여성이라는 틀을 넘어 과거 여성들에게 강요되었던 노동과 관련된 재료를 조각 작품에 적극적으로 도입한다. 옛 토기를 연상시키는 흙, 도자 같은 재료가 대표적이다. 전시에서는 사람의 크기를 몇 배 확대한 대형 청동, 세라믹 작업을 만날 수 있다. 스케일 큰 대형 조각은 여성 조각가는 아기자기 작은 작품만 만들 것이라는 사회적 고정관념의 틀을 깨뜨린다. 이집트 고대 석상과 흑인 여성을 떠올리게 하는 10여 점의 조각들도 함께 놓였다. 크기, 형태, 색감, 질감이 다양해 균형감을 이룬다.

여성 흑인 화가 에이미 쉐랄드의 대규모 회고전 '아메리칸 서브라임(American Sublime)'이 미국 서부 샌프란시스코의 SF MoMA에서 열리고 있다. /사진제공=엄태근




또 다른 흑인 여성 스타 작가인 에이미 쉐랄드의 대형 회고전은 샌프란시스코 현대미술관 (SF MoMA)이 기획했다. ‘아메리칸 서브 라임(American Sublime)’이라는 제목을 내걸고 내년 3월 9일까지 열릴 예정이다.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재선된 직후 시작된 전시인 만큼 “누가 미국인으로 불리며, 미국인으로 산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시의적절한 질문을 함축한 제목이다. 쉐랄드가 2007년부터 약 20년 간 작업한 50여 점의 회화와 드로잉을 감상할 수 있다. 이 전시는 서부에서 시작해 동부 뉴욕 휘트니미술관(the Whitney Museum of American Art)을 거쳐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국립 초상화 갤러리(the Smithsonian’s National Portrait Gallery)로 순회할 예정이다.

에이미 쉐랄드는 초상 사진을 기반으로 회화 작업을 한다. 그리고자 하는 인물을 스튜디오로 초대해 자신이 상상하는 의상을 입히고 배경을 직접 세팅한 후 인물 촬영을 진행한다. 초상 사진뿐만 아니라, 과거 미국의 사진과 잡지에 자주 등장했던 백인 중심의 모델을 흑인으로 전환해 그리기도 한다. 의도적으로 밝은 배경 색을 택하는데, 흑인 인물들은 완전한 검정이 아닌 그림자 색 같은 회색의 여러 가지 레이어들로 묘사돼 배경과 대조를 이루며 묘한 느낌을 자아낸다.

에이미 쉐랄드가 그린 미쉘 오바마 초상화. 미국의 첫 흑인 대통령 부인을 그린 이 작품은 쉐랄드를 스타작가 반열에 올려놓았다. /사진제공=엄태근


쉐랄드의 회화 속 인물 대부분은 일반 사람들이지만 종종 사회·정치적 이슈를 품은 인물들도 그림의 주제가 된다. 이번 전시에서 제일 주목 받는 작품은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의 부인인 미셸 오바마의 초상화다. 첫 흑인 대통령과 그의 영부인의 초상화가 제작된 유례가 없었던 만큼 2018년 대중에 공개된 쉐랄드의 이 대표작은 존재 자체로 큰 역사적 의미를 가진다. 평범한 시민의 희생을 기리는 브리어나 테일러(Breonna Taylor)의 초상화도 의미가 크다. 테일러는 2020년 켄터키 주 루이스빌에서 백인 경찰의 무차별하게 총격으로 사망한 인물로, 당시 조지 플로이드 사건과 더불어 큰 사회적인 이슈가 됐다.

태평양으로 맞닿은 미국 서부의 두 미술관에서 선보인 두 흑인 여성 작가의 수십 년 걸친 작업들. 이들이 이야기하고 있는 동시대적 쟁점은 인종, 젠더를 넘어서 과거로부터 현재까지 고질적으로 반복되고 있는 사회문제이기도 하다. 과거와 달리 예술가들이 자신의 목소리를 당당히 낼 수 있는 시대인 만큼, 이런 예술가들의 외침이 사회의 진정한 변화를 유도할 수 있기를 바라본다.



▶▶필자 엄태근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를 졸업하고 뉴욕 크리스티 에듀케이션에서 아트비즈니스 석사를 마친 후 경매회사 크리스티 뉴욕에서 근무했다. 현지 갤러리에서 미술 현장을 경험하며 뉴욕이 터전이 되었기에 여전히 그곳 미술계에서 일하며, 리만머핀 서울 갤러리의 '원더랜드' 등 전시기획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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