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엄사령부 포고령 속 ‘처단’ 대상으로 올라왔던 전공의들이 8일 거리로 나와 책임자 처벌과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을 비롯한 의료개혁 전면 백지화를 요구했다.
서울대병원 전공의협의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이날 서울 종로구 마로니에공원에서 의료계엄 규탄 집회를 열었다. 경찰 추산 500명(주최 측 추산 600명)이 참석한 이 집회는 2월 의정갈등 시작 이래 전공의들이 처음 단독으로 진행한 공식적 집회다. 이들은 “윤석열 대통령은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도 못한 채 반헌법적인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헌정 질서를 파괴하고 민주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중대한 폭거”라고 주장했다. 전공의들은 ‘즉흥 개혁 규탄’ ‘의료계엄 반대’ ‘의료농단 의대모집 중단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규탄했다. 9일로 마감하는 내년 전공의 모집에도 응하지 않겠다는 발언도 이어졌다.
우병준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는 계엄사령부 포고령에 대해 “특정 직역을 대상으로 임의 처단의 의지를 드러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계엄사령부가 지난 3일 발표한 포고령은 ‘전공의를 비롯하여 파업 중이거나 의료현장을 이탈한 모든 의료인은 48시간 내 본업에 복귀하여 충실히 근무하고 위반 시 계엄법에 의해 처단한다’고 언급했다. 우 사직 전공의는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직업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언제든지 권력의 변덕에 따라 처단당해 마땅한 직업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익명을 요구한 서울대병원 사직 전공의는 “의료인을 처단한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참석자들도 이에 호응해 “말이 안 된다”고 외쳤다.
흉부외과를 전공했던 한 여성 사직 전공의는 비상계엄령이 선포된 지난 3일 밤 출산했다고 자신을 소개하며 “12시간의 진통 끝에 아이를 낳고 회복실에 누워서 핸드폰을 봤는데 너무 힘이 들어서 꿈꾸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아이에게 옳고 그른 것을 떳떳하게 가르치는 엄마이고 싶어서 이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휴학 의대생도 집회에 참석했다. 서울의대 휴학생은 “본과 1학년 1학기가 끝난 소중한 여름방학에 못다 한 공부를 하겠다며 해부학 교실로 달려 나가던 의대 친구가 이제는 한국 의료에는 미래가 없다며 미국으로 나가겠다는 슬픈 말만 하고 있다”며 “대한민국 의료에 기여하겠다던 그 꿈은 왜 끝없는 좌절 속에 빛을 잃어야 하느냐”고 말했다.
사직 전공의들은 공개발언을 마치고 피켓을 든 채 대학로 일대를 행진했다. 이들은 젊은 의사들의 신변 안전과 인권을 보장 받기 위해 지속적으로 행동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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