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이 대선 승리 후 첫 해외 방문지인 프랑스 파리에서 취임 전 정상외교를 본격화했다. 트럼프는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과 예정에 없던 3자 회동에 나서며 존재감을 과시했다. 조르자 멜로니 이탈리아 총리를 비롯한 각국 정상들과도 만나는 등 내년 ‘트럼프 2기’ 출범을 앞두고 이미 영향력 행사에 나섰다는 평가가 나온다.
트럼프는 7일(현지 시간) 노트르담대성당 재개관 기념식 참석차 방문한 파리에서 마크롱의 주선으로 젤렌스키와 전격 3자 회동을 했다. 엘리제궁에서 약 30분간 진행된 이번 회동은 애초 일정에 없었지만 마크롱이 트럼프를 설득해 극적으로 성사됐다.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미 대선 이후 대면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폴리티코는 “트럼프는 마크롱과의 양자 회담 시작 때만 하더라도 (젤렌스키와의) 만남에 부정적이었지만 막판에 마음을 바꿨다”고 전했다.
3자 회동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논의가 오갔는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젤렌스키는 트럼프에게 우크라이나 전쟁 상황과 미국의 지원 필요성을 피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젤렌스키는 회동 후 X(옛 트위터)에서 “훌륭하고 생산적인 만남이었다”며 “모두가 가능한 한 빨리, ‘공정한 방식’으로 전쟁이 끝나기를 바란다. ‘힘을 통한 평화’는 가능하다”고 밝혔다. 트럼프가 거듭 강조한 ‘힘을 통한 평화’에 보조를 맞추면서 우크라이나의 협상 원칙인 ‘공정한 평화’에 방점을 찍은 발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마크롱 역시 X에서 “미국과 우크라이나·프랑스가 역사적인 날 함께 모였다”며 “평화와 안보를 위한 공동의 노력을 계속하자”고 강조했다.
유럽 현지에서는 이번 회동이 향후 휴전 협상에서 우크라이나의 입지를 개선할 계기가 됐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간 우크라이나 지원에 비판적 입장을 밝혀온 트럼프가 젤렌스키와 나란히 선 모습 자체로 러시아에 ‘우크라이나 편에 선 트럼프’라는 메시지를 줄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8일 트루스소셜에서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는 협상을 통해 (전쟁의) 광기를 멈추고 싶어한다”며 “즉각적 휴전이 이뤄지고 (종전) 협상이 개시돼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나는 (러시아 대통령인) 블라디미르 푸틴을 잘 알고 있다. 지금은 그가 행동에 나설 때”라고 강조했다. 지난달 미 대선 직후 트럼프와 젤렌스키가 전화 통화한 데 이어 이달 초에는 젤렌스키의 측근인 안드리우 예르마크 수석 보좌관이 워싱턴을 방문해 트럼프 측 인사들과 연쇄 회동했다. 젤렌스키는 나토 가입을 조건으로 러시아에 일부 영토를 내줄 수 있다는 입장으로 선회한 상황이다.
3자 회동 후 열린 노트르담대성당 재개관 기념식에서도 트럼프의 영향력은 여실히 드러났다. 2019년 4월 화재로 무너진 성당의 복원을 기념한 행사에는 50개 국가 정상이 초청됐다. 트럼프는 마크롱 바로 옆자리에 앉았으며 조 바이든 대통령을 대신해 자리한 질 바이든 여사의 좌석은 브리지트 마크롱 여사 옆에 배치됐다. 트럼프는 이날 영국의 윌리엄 왕세자와 만난 데 이어 다른 국가 정상들과도 잇따라 만날 계획이라고 CNN은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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