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집권여당의 본회의 불참에 따라 자신의 직위는 유지하게 됐지만 국가위원회로 출범한 인공지능(AI), 바이오, 우주 등 국가 명운이 걸린 전략기술은 모두 올스톱 상태에 빠졌다. 국가AI위원회와 국가바이오위원회, 국가우주위원회는 윤 대통령이 직접 위원장을 맡아 기초연구부터 상용화 단계까지 기술연구를 총괄·조정하는 전략기술위원회다. 이들 위원회뿐만 아니라 과학 연구개발(R&D)등의 과학기술 정책 수행이 사실상 기능을 상실할 수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8일 국회와 ICT업계에 따르면 오는 9일 예정된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 ‘AI기본법’은 상정되지 않을 전망이다. 법사위는 비상계엄령과 관련한 ‘내란 의혹 특검 수사요구안’이 논의될 예정이다. 10일 본회의 일정도 불확실하다.
탄핵마저 국민의힘의 본회의 불참으로 무산되면서 정국은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안갯속에 빠져들었다. AI기본법 상정은 커녕 내년 예산안 통과도 기약할 수 없게 돼 과학기술 정책 전체가 멈춰 설 위기에 놓인 형편이다. 이날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가 “(윤 대통령의)질서있는 조기 퇴진 과정에서 혼란이 없을 것”이라며 한덕수 국무총리와 함께 공동기자회견을 했지만 구체적인 퇴진 일정 조차 공개되지 않아 혼란은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 AI기본법 제정에 힘을 쏟았던 국가AI위원회도 뚜렷한 대안을 내놓지 못한 채 정국 안정을 기다릴 수 밖에 없게 됐다.
우주위원회도 마찬가지다. 윤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우주위원회가 격상된 뒤 지난 9월 처음 열린 우주개발진흥실무위원회에서는 우주산업 클러스터 사업 추진계획이 논의됐다. 2030년까지 7년간 총 3808억 원의 사업비를 전남, 경남, 대전 등 3개 특화 지구에 투입하는 내용을 중심으로 하반기 이후 본격적인 투자가 실시될 예정이었지만 역시 난망한 상황에 처했다. 조립시험시설, 발사체기술사업화 센터 등이 마련될 전남 발사체 특구나 위성개발에 필요한 시설 장비 등이 중심이 될 경남 위성 특구 등도 차질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주기술혁신인재양성센터 설립이 예정된 대전 연구·인재개발 특구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이미 출범한 AI와 우주위원회는 그나마 사정이 나은 편이다. 민간 부위원장을 선임하고 이달 정식 출범을 예고한 국가바이오위원회는 출범 자체가 어려울 수 있다는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바이오산업은 윤석열 정부가 출범 초기부터 국가 신성장동력으로 육성하겠다고 거듭 강조해온 분야지만 계엄령에 따른 정국 불확실성이 바이오 산업까지 확산되는 양상이다.
바이오 업계 한 관계자는 “탄핵을 피했다지만 현재 대통령이 국정 수행이 가능한지 모르겠다”며 “현 상황이라면 예정된 시기에 출범하는 게 어렵지 않을까 싶다”고 전했다.
과기정통부가 추진 중인 글로벌 R&D 확대 정책에 대한 우려도 있다. 과기정통부는 내년에 글로벌 R&D 지원에 특화된 '전략거점센터'를 8곳 지정할 예정인데, 비상계엄으로 우리나라의 국제적 신뢰가 흔들린 상황이라 국제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는 우려까지 더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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