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한국이 앞선다는 우월감이 아닌 치열한 경쟁 모드로 접근해야 한다.”
중국에서 활동하고 있는 반도체 전문가인 이우근 칭화대 집적회로학과 교수는 미중 기술패권 경쟁 속에 반도체 자립화에 속도를 내고 있는 중국과 한국이 기술 경쟁을 피할 수 없다며 초격자를 유지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며 이같이 말했다.
이우근 교수는 10일 베이징 차오양구 힐튼호텔에서 열린 제95회 베이징모닝포럼에서 ‘반도체 산업 동향과 역학관계 및 향후 전망’을 주제로 한 강연에서 “중국의 반도체 산업 생태계는 국산화를 최우선으로 한다”며 “차보즈에 맞서 산업 자생력을 위한 적극적인 지원으로 기술 경쟁력을 키워가고 있다”고 강조했다. 차보즈(卡脖子)는 목을 조르다는 뜻의 중국어로 중국의 발전을 억누르는 미국 등 서방의 조치를 말한다.
중국은 차보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핵심 기술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특히 미중 경쟁이 가열되면서 첨단 반도체 분야에서 대중 제재가 강화돼 반도체 국산화에 국가 역량을 집결하는 상황이다.
이 교수는 중국이 메모리 분야에서 D램 분야의 기술 추격이 가시화되고 있고 인공지능(AI) 신메모리 연구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밝혔다. 특히 반도체 설계 자동화(EDA) 분야에서 중국의 기술 발전에 많은 진전이 있다고 전했다. 그는 “중국은 미중 갈등 이전부터 EDA 산업 육성에 많은 투자를 했다”며 “중국이 실질적으로 한국보다 우위에 있는 산업”이라고 설명했다. EDA 분야는 미국이 중국의 팹리스(반도체 설계)와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에 치명적인 타격을 줄 수 있는 핵심 산업이지만 중국은 오픈소스 RISC-V, 칩렛 등 새로운 IP 생태계 구축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 교수는 중국 시스템 반도체 산업의 잠재력도 무시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반도체 후공정(패키징)뿐만 아니라 선공정(설계)에서도 급격한 발전으로 약진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이 교수는 “수많은 팹리스 회사들은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큰 기초 체력이 되고 있다”며 “해외 유학파의 맹활약으로 탈미국 중국 인재는 오히려 미국의 고민거리가 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국제고체회로학회(ISSCC)의 2023년 논문 채택 수에서 중국은 처음으로 한국, 미국, 일본, 대만을 앞지른 것으로 나타났다. 이 교수는 “시스템반도체에서 중국의 한국 추격은 AI 시스템 반도체의 위협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 교수는 반도체 분야에서 한국과 중국의 협력을 강조했지만 난관도 적지 않다는 견해를 밝혔다. 팹리스 분야에선 IP 창출과 라이센스 공유가 가능하고 레거시 공정으로 AI, IoT(사물인터넷), 자율주행 등 공동연구 지원, 표준화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파운드리 부문에선 중국 내 급증하는 팹리스 회사가 잠재적 고객이 될 가능성이 있고 첨단공정을 배제하더라도 협력한 제품이 많다고 설명했다. 중국의 파운드리 산업이 확장될 경우 소부장 분야에서 협력은 더욱 늘어날 것으로 기대된다. 하지만 이 교수는 “메모리 분야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한국에 대한 견제 가능성이 있고 미중간의 갈등으로 인해 제약이 발생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재집권에 따라 미국과 한국, 일본, 대만의 칩4 동맹이 한국을 배제한 칩3 동맹으로 변화할 수도 있는 만큼 한국의 강점인 메모리 분야의 경쟁력 유지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분야에서 아직까지 초격차 기술력을 확보하고 있지만 중국과의 협력을 위해 ‘반(半)격차’ 전략을 통해 중국 시장을 공략하는 것이 효과적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위해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이 필요하고 대학에서는 좋은 인재를 길러내야 하며 기업들은 미래를 내다본 투자와 인수합병(M&A) 등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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