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주부터 삭센다, 위고비 등 비만치료제 처방이 제한됩니다. ”
며칠 전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다운로드를 받아놓고 잊은지 오래된 비대면진료 앱의 푸시알람이 울렸습니다. 두달 전 국내 출시와 동시에 불티나게 팔리고 있는 비만 치료제 ‘위고비(성분명 세마글루타이드)’의 비대면 진료 처방이 15일까지만 가능하다고 안내하는 내용이었죠.
위고비는 덴마크 제약사 노보노디스크가 개발한 GLP-1(글루카곤 유사 펩타이드) 유사체입니다. 미국 대통령선거 이후 트럼프 당선인의 최측근으로 부상한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 등 해외 셀럽들의 체중 감량 비결로 입소문을 타면서 세계적인 품귀 현상이 일어나고 있죠. 미국에서는 한 달 접종 가격이 1350달러(약 180만 원) 수준인 데도 일주일에 한 번씩 68주간 투여했을 때 평균 14.9%의 체중 감량 효과가 나타났다는 임상 연구 결과에 힘입어 폭발적인 수요가 이어지고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나라에서도 10월 15일 공식 출시 전부터 사전예약 붐이 일었죠.
위고비 열풍의 이면에는 ‘비교적 쉬우면서도 안전하게 살을 뺄 수 있다’는 믿음이 자리합니다. GLP-1은 본래 음식을 먹을 때 소장에서 분비되는 호르몬으로 체내 혈당 및 식욕 조절에 관여한다고 알려졌습니다. GLP-1 유사체는 말 그대로 GLP-1 호르몬을 흉내내는 물질이죠. 체내 투여하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를 증가시키고 궁극적으로 혈당을 떨어뜨립니다. 위의 음식물 배출속도를 더디게 하고 간 내 포도당 합성을 감소시키며 뇌에 신호를 보내 포만감을 느끼게 하는 부가 효과도 나타내죠. 원래 우리 몸에 있는 물질과 유사한 성분을 추가로 넣어준다니, 기존 다이어트 약보다 한결 안전하게 살을 뺄 수 있겠다는 기대감이 샘솟지 않나요? 실제 노보노디스크는 위고비의 전신격인 GLP-1 유사체 ‘빅토자(성분명 리라글루타이드)’를 제2형 당뇨병 치료제로 개발했다가 체중감량 효과가 더욱 주목을 받자 주성분의 용법, 용량만 바꿔 비만치료제로 판매하기 시작했습니다. 그 약이 바로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는 ‘삭센다’죠. 복부, 허벅지 등 지방조직에 하루 한 번씩 주사하는 삭센다가 2018년 국내 발매 직후 불티나게 팔렸던 것을 생각하면 일주일에 한 번 맞는 위고비 열풍이 어느 정도 이해가 갑니다.
올해 10월부터 국내 시장에 풀린 위고비의 공급가는 한달치 기준 37만 2025원으로 미국보다 훨씬 저렴했습니다. 마침 정부는 올해 2월 전공의 집단 사직에 따른 의료공백을 완화한다는 명분 하에 시범사업 형태로 비대면 진료를 전면 허용하던 참이었죠. 결과는 예상대로였습니다. 스마트폰앱을 통해 비대면 진료를 신청하면 (키와 몸무게를)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처방전이 발급된다고 해서 '1분컷', '30초컷'이란 말이 돌 정도였으니까요. 얼마 전에 만난 한 지인은 확 늘어난 뱃살을 빼겠다고 벼르던 남편이 비대면 진료 플랫폼을 켜더니 1분도 안돼 위고비를 처방받는 모습에 놀랐다며 혀를 내두르더군요.
무분별한 위고비 처방이 계속해서 도마에 오르자 보건복지부는 각 병원에 공문을 보내 "위고비 처방 시 충분한 진료를 통해 대상 환자 여부를 확인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국내에서 위고비의 처방 대상은 체중을 키의 제곱으로 나눈 값인 체질량지수(BMI) 30kg/m² 이상이거나 BMI 27kg/m² 이상이면서 고혈압 등 동반 질환이 1개 이상인 환자로 제한돼 있거든요. 대한비만학회 등 의료전문가 단체도 일제히 오남용을 우려하는 목소리를 냈죠. 그럼에도 위고비를 포함한 비만 치료제들의 무분별한 처방과 불법 유통 우려가 끊이질 않자 복지부는 지난달 말 식품의약품안전처 등 관계부처 협의와 비대면진료 시범사업 자문단 회의 등을 거쳐 특단의 조치를 내놨습니다. 이달 2일부터 비대면진료 시에 위고비를 포함한 비만 치료제 처방을 제한하기로 한 건데요. 현장의 혼란을 최소화하기 위해 2주간의 계도기간을 갖기로 했습니다. 이번 주말이 지나면 계도기간이 끝나니 비대면 진료 플랫폼들이 부랴부랴 안내에 나선 셈이죠.
제가 예민한 건지 모르겠지만 "12월 15일 이후부터 비대면 처방이 중단된다"는 안내 문구가 마치 "15일 전에 처방을 받으라"고 애둘러 표현하는 것처럼 느껴져 편치만은 않았습니다. 심지어 “오늘 진료 받아야 처방 받을 수 있다”고 안내하는 플랫폼도 있더라고요. 각종 제한 조치에도 불구하고 위고비를 둘러싼 관심은 여전히 뜨거워 보입니다.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도 '위고비 처방 후기'를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죠. 결코 저렴하진 않지만 "다이어트 한약보다 싸다"거나 "퍼스널 트레이닝(PT) 받는 셈 치고 맞아보고 싶다"는 반응도 많더라고요. 하지만 한발 앞서 위고비 판매가 시작된 해외에서는 투여 후 체중에 별다른 변화가 없어 실망하는 이들도 적지 않습니다. 위고비를 투여했던 환자 중 3분의 2 정도가 약을 끊은 후 원래 체중으로 돌아오는 요요현상을 경험했다는 연구 결과도 보고된 바 있죠. 무엇보다 BMI 등 기준에 맞지 않는 사람이 위고비를 투약할 경우 구토, 변비, 복부 팽만을 비롯해 흡인성 폐렴과 췌장염 등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서는 70대 남성이 위고비 용량을 자의로 늘렸다가 급성 췌장염으로 입원한 뒤 사망한 사례도 있죠. 어떤 제도든 빠져나갈 구멍은 생길 수 있습니다. 본인의 건강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는 사실, 잊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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