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이 금리 인하에 속도를 내고 있다. 경기 침체에 대한 우려가 주된 이유지만 미국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이 한 달 남짓 남은 가운데 ‘관세 폭탄’과 ‘무역 전쟁’ 등에 대응하기 위한 채비에 나섰다는 분석도 있다.
유럽중앙은행(ECB)은 12일(현지 시간) 올해 마지막 통화정책회의를 열고 정책금리를 0.25%포인트 인하했다. 이로써 유로존의 예금금리는 연 3.25%에서 3.00%로 내려앉았다. 기준금리는 연 3.40%에서 3.15%로, 한계대출금리도 연 3.65%에서 3.40%로 낮아졌다. ECB는 올해 6월부터 네 차례의 금리 인하를 단행해 예금금리 기준 총 1%포인트의 금리를 내렸다. 미국과의 금리 차는 1.50~1.75%포인트까지 벌어졌다. 전문가들은 ECB가 내년에도 점진적인 금리 인하를 이어갈 것으로 보고 있다.
금리 인하 배경에는 유로존 성장 둔화에 대한 우려가 깔려 있다. 이날 ECB는 올해 유로존의 경제성장률 전망을 기존의 0.8%에서 0.7%로, 내년 전망치 역시 1.3%에서 1.1%로 하향 조정했다. 크리스틴 라가르드 ECB 총재는 “최근 지표를 보면 성장 모멘텀이 꺾이고 있다”며 “제조업은 여전히 위축됐고 서비스업 성장도 둔화하고 있다”고 말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집권이 불러올 불확실성은 유럽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된다. 라가르드 총재는 미국의 관세정책에 대해 “통상 마찰 위험이 수출과 세계경제를 약화시켜 유로존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무역 갈등이 커지면 유로존 인플레이션 전망도 더욱 불확실해질 것”이라고 짚었다.
트럼프 2기가 몰고 올 불확실성에 대한 우려로 과감한 금리 인하를 결정한 중앙은행은 빠르게 늘고 있다. 블룸버그는 “유럽 중앙은행들이 트럼프 2기로 인한 경제 혼란에 대비하기 위해 단호한 비둘기파적(통화 완화) 태도를 취하고 있다”고 전했다. 이날 스위스중앙은행은 기준금리를 1.0%에서 0.5%로 전격 인하했다. 2022년 9월 이후 최저치다. 마르틴 슐레겔 총재는 내년 스위스의 기준금리가 마이너스로 다시 내려갈 가능성을 거론했고 앙투안 마르틴 부총재는 “해외 상황이 스위스 경제의 주요 리스크”라고 말했다. 덴마크중앙은행도 같은 날 기준금리를 2.85%에서 2.60%로 0.25%포인트 하향 조정했다. 전날 캐나다은행 역시 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며 올해 다섯 번째 금리 인하에 나섰다. 티프 매클럼 캐나다은행 총재는 트럼프의 ‘25% 관세’ 위협에 대해 “이것은 새로운 주요 불확실성”이라며 “(실제 실현될 경우) 매우 파괴적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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