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가 국회로부터 ‘탄핵의 공’을 넘겨받게 되면서 여의도에서 탄핵을 촉구하던 시민들이 오는 16일부터는 광화문·시청 등 헌재 인근으로 근거지를 옮겨 시위를 이어간다. 탄핵 반대 세력 역시 같은 위치에서 대규모 집회를 예고한 만큼 지난 2016년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8년 만에 ‘촛불’과 ‘태극기’간 대립이 서울 한복판에서 다시 한 번 펼쳐질 전망이다.
15일 진보 성향 시민단체 촛불행동은 시청역 7번 출구에서 ‘윤석열 체포 김건희 구속 촛불대행진’을 진행했다. 촛불행동은 당초 헌법재판소 앞에서 집회를 진행하려 했으나 불허 통보를 받아 차선책으로 시청역 앞에서 집회를 마친 후 헌법재판소를 향해 행진했다. 단체 측은 “헌재가 윤석열을 파면할 때까지 16일부터 매일 저녁 7시 헌재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진행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전날까지 ‘탄핵’을 외치던 참가자들은 이날부터는 구호를 바꿔 ‘파면’과 ‘체포’를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고등학교 3학년 이 모(19) 씨는 “헌재 판결이 나올 때까진 끝난 게 아닌 만큼 계속 집회에 참여해 힘을 보태고 싶다”고 했다. 최 모(27) 씨도 “국회가 ‘1라운드’라면 헌재가 ‘2라운드’”라며 “2라운드를 깰 때까지 다들 꾸준히 집회에 나와서 목소리를 내줬으면 좋겠다”고 강조했다.
여의도 촛불집회를 주최한 ‘윤석열즉각퇴진·사회대개혁비상행동(이하 비상행동)’도 전날 탄핵안 가결 직후 입장문을 내고 “오는 16일부터 매일 오후 6시에 광화문 앞에서 촛불집회를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이들 역시 집회를 마친 후 헌법재판소 방향으로 행진할 예정이다. 비상행동은 “이제 시작이고 긴장을 늦춰선 안 된다”며 “오는 21일에도 오후 3시 전국 광역지역 동시다발로 촛불을 열고 서울 광화문 앞에서는 대규모 촛불 집회를 개최하려고 한다”고 강조했다.
전날 광화문에서 대규모 탄핵 반대 시위를 열었던 대한민국살리기운동본부(대국본)도 주말 집회를 이어갈 계획이다. 전광훈 대국본 의장은 “다음 주 토요일인 오는 21일에도 광화문에서 집회가 열릴 계획이니 모두 10명씩 데리고 와 달라”고 독려했다. 보수 유튜버 손상대씨도 16일 오후 1시부터 매일 헌재 앞에서 탄핵 반대 집회를 열 예정이다.
양측이 광화문에서 본격 격돌하는 건 지난 2016년 말 박 전 대통령 탄핵 정국 이후 꼭 8년 만이다. 앞서 비상계엄 직후 양측 집회가 광화문에서 동시에 열린 적이 있긴 하지만, 탄핵소추안 1차 표결 전이었을 뿐더러 평일 저녁에 진행돼 규모가 크지 않았다.
앞으로 헌재 판단이 이뤄지기 전까진 특히 인파가 몰리는 주말마다 서울 도심에 교통 혼잡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윤 대통령 파면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면서 양측이 물리적 충돌을 빚을 수 있다는 우려도 내놓는다. 다만 8년 전 촛불집회가 총 23회차에 걸쳐 열릴 동안 가시적인 충돌 사례가 없었던 만큼 이번에도 별 문제가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고 있다. 이날 집회에 참석한 30대 엄 모 씨는 “보수단체들과 주무대가 겹쳐서 걱정하는 분들도 있지만 우리가 질서를 잘 지켜서 큰 문제는 없을 것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한편 전날 서울 여의도 국회 앞에는 주최 측 추산 200만 명(경찰 비공식 추산 20만 8000명)이 모여 윤 대통령 탄핵소추안 가결을 촉구했다. 오후 5시께 찬성 204표로 탄핵이 가결됐다는 소식에 시민들은 소녀시대의 ‘다시 만난 세계’를 떼창하며 환호성을 질렀다. 같은 시각 광화문에서 대국본 주최로 열린 ‘자유 대한민국 수호 국민혁명대회’에서는 실망한 참가자들이 썰물처럼 빠르게 집회 현장을 빠져나갔다. 주최 측은 이날 100만 명이 모였다고 주장했으나 경찰 비공식 추산으로는 4만 1000명이 모인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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