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이 15일 우원식 국회의장을 예방한 자리에서 “현 상황 수습이 공직 생활의 마지막 소임”이라고 강조했다. 비상계엄 후폭풍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국정 안정을 최우선 과제로 제시한 한 권한대행은 이틀 연속 ‘관리형 총리’답게 수습에 총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당장 국방부 장관 재지명과 ‘농업 4법’ 거부권 행사 등 정치적 결단이 필요한 순간이 다가오고 있어 국정 운영을 둘러싼 고비들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한 권한대행은 이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를 시작으로 권한대행 이틀 차 업무에 나섰다. 한 권한대행과 바이든 대통령은 한목소리로 굳건한 한미 동맹의 중요성과 양국 관계 발전을 얘기했다. 통상적인 메시지지만 함의는 가볍지 않다. 이와 관련, 조태열 외교부 장관은 “정상외교 공백에 대한 우려는 한 권한대행과 바이든 대통령의 통화로 불식됐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 권한대행은 이후 정진석 대통령 비서실장을 만나 대통령실과 총리실·국조실 간 업무 조정 협의를 했으며 부처 장차관 등을 불러 민생 현안을 보고받았다. 또 폴 러캐머라 주한미군사령관과 전화 통화 후 국회로 이동해 우원식 의장을 예방하는 등 숨가쁜 일정을 소화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의결된 14일 오후 한 권한대행은 전군 경계 태세 강화를 주문하는 등 전 부처에 긴급 지시를 내리고 임시 국무회의와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잇따라 개최했다. 대국민 담화를 통해 국정 안정 의지도 강조했다.
대한민국 최장수 총리이자 40년 넘게 공직을 수행하며 주미 대사까지 지낸 한 권한대행이 현재의 탄핵 국면을 조기에 수습하고 국정 혼란을 최소화할 적임자라는 데는 야당도 동의하는 모양새다. 다만 한 권한대행이 그의 특기대로 온전히 ‘현상 유지’에만 매진하기는 어려운 여건이다.
당장 국방부 장관 공석을 채울지부터가 고민거리다. 북한의 도발 위협과 러시아와 북한 간 군사 밀착 등으로 안보 위협이 높은 상황에서 국방 수장을 비워두는 데 대한 우려가 높다. 그러나 한 권한대행이 국방장관을 직접 지명하는 적극적 권한 행사를 할지는 또 다른 문제다. 그가 불법 계엄 사태의 수사 대상이라는 점도 걸림돌인데 국방장관에 적임인 후보자를 찾는 것도 쉽지 않은 상황이다. 윤 대통령은 계엄 해제 후 이달 5일 최병혁 주사우디아라비아 대사를, 12일 한기호 국민의힘 의원을 차기 국방장관으로 지명하려 했으나 당사자들이 모두 고사했다.
한 권한대행이 17일 국무회의에서 지난달 28일 야당 주도로 국회를 통과한 농업 4법(양곡관리법·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법·농어업재해대책법·농어업재해보험법 개정안) 등 6개 법안에 대해 거부권을 행사할지도 관심사다. 정부·여당 모두 그간 거부권 행사의 뜻을 밝혀왔고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도 이달 13일 이 법안들에 대한 거부권 행사를 주장한 만큼 재의요구권을 발동하는 것이 그간 흐름에 맞지만 자칫 ‘적극적 권한 행사’라는 야당의 거센 비판에 직면할 수 있다.
이에 비해 공석인 3명의 헌법재판관 임명은 국회의 추천을 받아 임명만 하는 수동적 권한 행사여서 큰 이견은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 권한대행의 입지가 불완전한 탓에 야당과의 협력은 불가피하다. 정부가 이날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여야정협의체 제안에 대해 “헌법과 법률에 따라 국정의 조속한 안정을 위해 여야를 포함한 국회와 적극적으로 협력할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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